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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병종 회향전' 의미

전북이 낳은 세계적 작품들 고향·생명 되새기는 시간을

▲ 김병종 作 ‘웃는 말’

김병종, 전북 남원에서 난 작가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 오셨단 소리에 같이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혼자 덩그러니 남아야 했던 트라우마도 있던 곳. 그곳을 그는 여전히 그리워한다.

 

예술을 하게 하는 그 감성이야 얼마나 강렬하겠는가. 아버지 대신 바라 본 사람,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자신의 목숨조차 남을 위해 버렸던 바보 예수는 그에게 그렇게 포착되었다.

 

수묵이라면 으레 서예와 사군자, 전통 산수화를 떠올려야 했던 우리 미술이었다. 우리 미술사는 그로 인해 다른 것이 되었다. 그를 화가로 기억하게 하는 첫머리에 수묵으로 그린 이 ‘바보 예수’가 놓인다.

 

전북도립미술관의 김병종 회향(回鄕)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도, 작가가 가장 ‘사연’ 많은 곳으로 보는 곳도 이 전시실이다. 수묵으로 그린 예수엔 어떤 제약도 없다. 백인인지 아닌지, 닮았는지 않았는지, 사실인지 아닌지 묻는 것은 불필요하다. 하나의 필획으로 모든 기운을 담아내려한 수묵화에서 예수는 얼굴생김으로 살필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신이 아닌 인간 예수, 눈물과 고통으로 절규하면서도 스스로 희생을 택한 바보처럼 작가도 죽음의 고비를 체험했다. 하여 파릇 돋아나는 작은 생명조차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생명의 노래> 는 흔들리는 생명에 대한 전율의 그림이다. 생명 언급의 준엄함을 전시회 개막식 특강에서 이어령은 적절히 비유해 주었다. 바다 속 어떤 물고기도 알 수 없는 바다의 모습은 죽음의 고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날치가 참치에 쫓겨 죽을 고비에서 마지막으로 바다를 뛰어오를 때 비로소 보게 되는 바다풍경. 김병종은 그와 같이 우리로 하여금 결코 볼 수 없던 생명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북에서 나서 세계 속의 한국 작가가 된 김병종은 이제 세계를 그림에 담는다. 지도를 가지고 놀았던 어린 시절을 작가는 기억한다. 지도를 가지고 논다는 것은 보지 않고 상상하는 것이다. 미지의 것을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넘나들며 이미 보고 있는 것이다.

▲ 최형순 도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세계를 드나든다고 세계가 보이는 것이 아니다. 토인비는 그래서 오히려 ‘앉아서 하는 유목’이 진정한 유목임을 강조한 바 있다. 보는 눈이 없으면 세상은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예민한 감수성으로 상상하며 읽은 세계를 찾아가 확인했다.

 

중남미, 아프리카가 화면 속에 담겼다. 수묵이 아니라 원색과 두터운 질감이 물결치는 화면이 되었다. 작품의 변화를 탓할 일일까. 아니다. 피카소의 풍성한 예술세계는 그보다 더한 변화도 담고 있지 않던가. 생기발랄한 생명이 살아있는 예술이라면 오히려 그런 변화를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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