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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짜가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 '짝퉁'과 '짜가'에 속고 또 속는다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유사품에 속지 마세요' 수도 없이 많이 봐 온 문구 하지만 속는 이유는 기술이 정교해서? 아니면 순박해서거나…

▲ ‘정품·정량·정성’을 굳이 적어서 내건 주유소.
신중현이 작곡하고 박인수라는 가수가 부른 〈봄비〉는 이렇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가수 박인수 못지않게 유명한 동명이인이 한 사람 더 있다. 1955년에 ‘한국판 카사노바 사건’으로 장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바로 그 박인수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수십 명의 부녀자를 농락한 죄로 법정에 섰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상대한 그 많은 여자들 중에 처녀는 딱 한 명뿐이었다고 한 진술이 크게 참작되었다는 후문이다. 그때의 판결문 중 유명한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법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해준다.”

 

그는 당시 해군대위를 사칭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사건 이후로도 유사한 사칭 사건이 이 땅에서 빈번하게 벌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박인수의 ‘해군대위’는 가난한 법대생이나 사법연수원생, 재미 사업가, 재벌 아들, 연예기획사 사장 등을 사칭하는 가짜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하는 덜떨어진 여자들 또한 부지기수였다. 사칭을 당한 여자들 모두 그 배경에는 욕심과 허영심이 자리하고 있다.

 

‘사칭(詐稱)’은 가짜를 진짜로 포장하는 일이다. 거짓을 진실로 위장해서 상대를 속이는 행위다. 카사노바 박인수는 백수건달인 진짜와 진실을 숨겼다. 가짜이자 거짓인 해군대위 행세로 그 많은 부녀자들의 환심을 샀다.

 

백수건달 신분을 곧이곧대로 밝혔다가는 어느 여자도 거들떠봐 주지 않는다. 명문 대학 법대생으로 위장해야 한다. 재미 사업가 따위를 사칭하면 만사가 술술 풀린다. 그걸 굳이 마다할 리가 없는 것이다.

 

진짜나 정직은 눈앞의 실익을 놓치기 쉽다.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짜나 거짓은 정반대다. 확실히 편리하다. 많은 이익을 손쉽게 낼 수 있다. 짝퉁 제품을 양산하면 적게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지금도 그런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짝퉁으로라도 허영심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칭에도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문득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1993년에 가수(?) 신신애가 춤바람 난 두메산골 이장 사모님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 〈세상은 요지경〉이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야이야이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인생 살면 칠팔십년 화살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싱글 벙글 싱글 벙글 도련님 세상

 

방실 방실 방실 방실 아가씨 세상

 

영감 상투 삐뚤어지고

 

할멈신발 도망갔네 허~

 

이 노래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짜가’가 판을 치는 세상 탓이었으리라.

 

그런 ‘짜가’들의 위장술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활개를 치는 ‘짜가’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림처럼 ‘정품·정량·정성’을 굳이 적어서 내건 이유 또한 자명하다. ‘정품’도 아닌 석유 제품을 ‘정량’까지 속여 파는 주유소가 많다는 증거다.

 

‘짜가’는 다른 이들에게 손해를 입힌다. 삼겹살을 몇 그램 모자라게 내놓는 수준의 ‘짜가’는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정품 아닌 기름 한두 번 넣는다고 자동차가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커지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 현대사는 그야말로 ‘짜가’들이 판을 쳐 온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국자를 사칭했던 반민족 친일파 짜가,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근로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해 온 악덕 기업가 짜가, 온 국민을 반공 이데올로기에 가둬놓고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금하고 폭행하고 죽였던 짜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로 멀쩡한 강을 갈아엎어서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짜가, 저 어린 생목숨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시켜서 온 나라를 비탄에 빠뜨리고 수치심에 떨게 만드는 후안무치 짜가들까지….

 

‘유사품에 주의하세요’나 ‘유사품에 속지 마세요’라고 적힌 문구를 수도 없이 봐왔다. TV를 통해서도 무수히 들었다. 그런데도 ‘짝퉁’과 ‘짜가’들에게 속고 또 속는다. 사칭하는 기술이 정교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 국민이 천성적으로 순박해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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