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오랜 전주 생활 정리 / 섬진강미술관 명예관장 돼 / 군, 지역 미술활성화 기대
“이 집을 짓고 작업을 한 지 40년인데, 이제 떠나게 되었어.”
전주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한국의 거장, 박남재(87) 원로 화백이 고향 순창으로 돌아간다.
순창군은 지난 1일 박 화백을 순창의 섬진강미술관 명예관장으로 위촉하고, 거주하며 작업할 수 있는 미술관 내 공방을 제공한다. 박 화백은 전주의 자택 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앞으로 섬진강미술관에서 지내며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 11일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보니 40여 년 묵은 먼지에도 예술의 혼이 묻어난다. 한쪽을 둘러보면 150호 크기의 대작 ‘붉은 산’, 봄꽃이 눈처럼 피어난 ‘동계 매화밭’ 등이 있고, 다른 한쪽을 둘러보면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들이 보인다. 공간 자체가 예술의 역사이자 현장이다.
“점쟁이가 말하길 내가 98세까지 산다고 하더라고. 앞으로 남은 10여 년을 그림에 온 정성을 쏟으며 살고 싶어. 200호, 300호짜리 대형 캔버스가 10여 개도 사두었지. 그런데 지금 작업실에서는 다 펼치고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섬진강미술관 가보니 다 펼쳐놓고 마음껏 그릴 수 있겠더라고. 맑은 공기도 맘에 들고. 여생은 순창에서 터전을 잡고 그림 그려야지.”
박 화백이 입주하는 섬진강미술관은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국비 공모사업 ‘섬진강 A+A 타운벨트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냉장고, 세탁기, 침대 등이 갖춰진 미술관 내 공방에서 기간 제약 없이 머물 수 있다. 순창군 측은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화단의 대표 화가인 박 화백이 지역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것에 자랑스러워하면서 지역 미술 활성화도 기대하고 있다.
“작업 하려고 지은 건물인데 이제 아무도 살지 않게 돼서 그냥 놔둬야 하나, 팔아야 하나 고민 중이야. 내 사십 여년 작업의 추억이 깃든 곳인데 없애려면 아쉽지.”
전주에서의 작업 생활을 정리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전주에 있는 자택 겸 작업실은 정리를 고민하고 있는데, 만약 팔리게 되면 그의 40년 간 창작의 흔적은 사라지게 된다. 전주 작가들 사이에서는 전주에도 많은 지역 작가가 있지만 적재적소에 쓴 소리 해줄 큰 어른을 볼 수 없게 돼 아쉽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섬진강미술관은 예술과 행정 사이에서 잡음이 많던 곳이다. 관 주도 행정이나 예술과 농업을 연계한 A+A사업 취지에 걸맞지 않은 사업 등으로 지역 예술인들의 비판도 받았다. 순창군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이 끝난 후로 시설을 활용할 새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한국의 거장이 둥지를 튼 만큼 지역 활성화뿐만 아니라 그의 남은 예술의 혼을 펼칠 수 있는 미술관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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