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정신의 숲 기록물 수집 의미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사진 앨범 기증자인 김옹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눈을 크게 떴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하면서 궁금증이 더해졌다.
“한벽당이에요. 한벽당.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요? 옛날 모습을 보여주는 사 진 이구만요, 이 사진이...”
몇 달 전 전주시 ‘정신의 숲’에서 수집한 기록물 전시를 둘러보던 나는 오래된 사진 앨범 앞에 발을 멈췄다. 한 가족의 소중한 기억이 담긴 앨범을 민간기록물로 내어놓은 분의 뜻이 가상해서 한 장 한 장을 들추며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졌다. 그래서 어느 날 기증하신 분의 집으로 불쑥 찾아갔다. 찻상 위에 펼쳐진 복사판 앨범-원본은 정신의 숲에 기증했기에 복사본을 앞에 두고 노부부와 나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벽당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가족과 친구들 이야기에 앞서 사라진 옛 경관을 아쉬워하는 두 분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가족사진이 곧 도시사의 자료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노부부는 조부의 독사진을 보면서 한말(韓末)에 태어나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선대(先代)의 이야기를 하나둘씩 들춰냈다. 이제까지 장롱이나 문갑 그리고 상자 속에 고이고이 간직해 온 사진들처럼 가족 이야기도 개인의 기억과 마음에 가만히 묻어 둔 것들이다. 모서리가 찢겨 나간 사진처럼 노부부의 기억도 한 부분이 잘라져 나갔다. 구겨지거나 빛이 바랜 사진처럼 그분들의 기억도 어슴푸레해졌다. 그래도 한 장 한 장이 모두 소중한 사진처럼 아련하게 회상되는 그분들의 기억은 귀하기만 하다.
사진은 개인이 소장한 앨범이나 상자 속에서 나온 순간 역사적인 물증이 된다. 노부부의 가족 이야기이지만, 실은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삶의 희로애락을 다 접어두고 이 세상을 떠나버린 다정해 보이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코끝도 시큰해졌다. 그래서 낯선 가족사를 통해 나를 만나게 되는가 보다.
노부부가 보여준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가족사진 속에서는 부모님과 형제, 사촌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혼례사진 속에서는 신랑 신부가 처음 만나서 식을 올리기까지의 사연들도 숨어 있다. 또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로 둘러싸여서 찍은 부모님들의 회갑잔치 사진은 참 다복해 보인다. 한 장의 사진에서 우리는 가슴 절절한 가족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사진 속 배경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금은 없어졌거나 흔히 보기 힘든 경관이 사진 속에 나타나면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사라진 풍광 속과 관련된 우리의 기억이 되살아나서이다. 그래서 옛날 사진을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때로는 사진 속에 얼핏 보이는 풍경과 물건들이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서 역사적인 물증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가족사진 속에서는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사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사진은 특별한 때에만 찍거나 아니면 사진관이나 야외에 놀러 가서 기념으로 찍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어서 그랬다. 집안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드물어서 집안 내부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보기는 쉽지 않다. 집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사를 집으로 부르거나 사진기를 가진 친지나 친구를 데려 와야만 했다.
이 모든 것들이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추억거리고, 경험이 없는 신세대들에게는 역사공부가 된다. 특히 혼례나 회갑연 사진들은 역사적 물증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복장, 음식 그리고 혼례에 사용된 용품들이 과거의 의례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부부의 부모님은 집 마당에서 혼인식을 치렀다.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짓고 선 신랑 곁에 활옷에 원삼 족두리를 쓴 신부의 다소곳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신랑 신부를 에워싼 하객들이 던지는 덕담과 농담이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 당시에는 혼례 못지않게 회갑연도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사진 찍기 힘든 시절이었는데도 사진사를 불러다 기념사진을 촬영할 만큼 회갑의 의미가 컸다. 우리 할머니 때만 해도 60세를 넘기는 것이 장수(長壽)하는 것이라고 해서 잔치를 크게 했다.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서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회갑연에서는 부모님께 떡, 과일, 사탕을 높게 괸 상을 올리고 그 앞에서 자손들이 절을 하며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드리면서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아버지가 받으신 회갑 상 위뿐만 아니라 양쪽에 떡을 잔뜩 괴어 올려놓은 시루도 등장했다. 시루에다 떡을 찌던 시절 떡 맛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명절이나 잔치 때가 되면 떡쌀을 담그고, 다음 날에는 쌀을 씻어서 빻고 그 빤 가루를 시루에 안쳐서 김을 푹 올려서 떡을 찌셨다. 아이들이 기웃거릴라치면 할머니께서는 떡이 설익는다고 걱정을 하셨다. 아마도 맛있는 떡을 빨리 먹이고 싶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마음이 김이 덜 오른 시루를 미리 내릴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김이 오르는 시루 속에는 떡을 쩌 주는 귀신이 들어 있는가 보다 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잔치에서는 시루에 찐 떡을 마음껏 먹어보기도 하고, 또 잔치 끝나면 어김없이 작은 떡 보따리가 대청마루에 한 가득 펼쳐진다.
시루 채 들어다가 마루에 올려놓고, 손님들에게 떡 보따리를 싸시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길이 바빠진다.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이 빈손으로 가지 않도록 애를 쓰는 모습이 떠오른다. 드디어 큰 시루 속에 들어있던 그 많은 떡을 다 나누고 나면 어느덧 잔치도 막을 내린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찾아낸 노부부의 기억과 나의 애틋한 추억까지 더해져서 찻상 위에 마시다가 만 오미자차의 발그스레한 색깔이 노부부와 내 마음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함한희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전북대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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