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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언론 창달의 중심지, 전주

전주시가 지난해 2월 21일부터 3월 30일까지 실시한 ‘2018 전주기록물 수집 공모전’에서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에 거주하는 김용철씨(73)는 전주지역에서 발행된 신문과 잡지 등의 창간호 40여점을 내놓아 대상인 꽃심상을 수상했다.

김용철씨는 당시 “신문 등 출판물에 대한 애정이 많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그것들이 전주의 의미 있는 기록물로 남게 된다니 영광이다” 고 수상 소감을 피력했다.

그가 제4회 전주기록물수집공모전에 내놓은 자료는 1988년 전북도민신문과 전라일보, 전주일보 등 전주에서 발행된 지역신문 소식지와 창간호는 물론 당시 세상에 나온 생활정보지인 ‘번영로’와 ‘까치고을’ 창간호였다. 또 함께 출품한 ‘전주예술’, ‘소년문학’, ‘더불어 사는 전주’ 등 전주지역에서 쏟아진 다양한 종류의 신문·잡지류도 포함됐다. 지난 30년간의 전주 언론과 출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였다. 김용철씨의 출품작을 중심으로 1988년 이후 전북 신문 상황을 들여다본다.

김용철씨의 수집 출판물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신문은 전북도민일보와 전라일보, 전주일보의 소식지 및 창간호다.

1987년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6.29선언은 언론출판계 판도에 격랑을 일으켰다. 1988년 하반기 전북에서는 전북도민신문과 전라일보가 창간됐다.

1973년 5월 이후 유지되던 ‘전북일보 1도1사 체제’가 무너지고 ‘전북일보-전라일보-전북도민일보’ 3사 경쟁체제가 됐다.

△전북도민신문 창간

전북도민신문
전북도민신문

 전북도민신문은 1988년 8월 8일자 전북도민신문 창간 소식지(타블로이드 4면)를 냈다. 송주인 사장이 취임사를 통해 창간을 알렸고, ‘새 신문의 주인이 됩시다’란 공고를 통해 도민들이 주주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열기는 뜨거웠다. 소식지는 “도민주 20만 주를 돌파했고, 주주는 5000명에 육박한다”고 썼다.

또 소식지 4면에서는 전라일보와의 통합 추진 작업이 결렬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전북도민신문이 지난 5월 13일 자본금 7억5000만원, 전라일보가 5월 17일 자본금 3억2000만원으로 각각 법인회사를 설립한 뒤 3개월동안 통합협상이 시도되어 왔으나 통합사 제호부터 의견이 맞섰을 뿐만 아니라 도민주, 사원 정원 등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해 통합은 요원한 실정에 놓이게 됐다”고 알렸다.

전북도민신문의 발행인·인쇄인은 송주인, 편집인·편집국장은 서흥석씨가 맡았다. 1988년 10월14일 문공부에 등록(등록번호 가-78호)한 이 신문은 전주시 고사동 1가 340-1번지에 둥지를 틀고 11월22일 창간호 20면을 시장으로 출발했다.

창간호 1면에서 ‘함께 열자! 위대한 전북’이라고 주창했다.

송주인 사장은 창간사에서 “군사독재가 물러가고 민주화, 지방화의 새로운 시대의 장이 열리는 이때 3500여 명의 주주들 출자금을 근간으로 창간,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해 사랑받고 신뢰받는 공기(公器)로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창간 축하 메시지는 민정당 윤길중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했고, 박권상 자유기고가

는 창간 특별기고를 통해 “여론의 힘으로 국회를 움직여 명실상부한 지방자치를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특집기사에서는 낙후 전북의 탈피, 판소리, 지방자치제를 맞는 도민의식조사 등을 다뤘다.

당시 도지사는 강현욱, 전주지검장은 유순석, 교육감은 홍태표, 전주시장은 육종진이었다. 주요 창간 축하 광고는 문화연필, 호남식품 보리음료 보리보리, 쌍방울 등이었다.

1989년 2월 27일 주총에서 김재호 이사가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경영권을 장악했고, 1990년 10월 10일 새롭게 출범한 경영진이 제호를 전북도민일보로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4년부터 김택수 사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전라일보 창간

전라일보
전라일보

전라일보는 1988년 7월 29일 ‘등록번호 가-69호’로 문공부 등록을 전북도민신문보다 먼저 마쳤지만, 약 1개월 뒤인 1988년 12월 20일 36면에 달하는 묵직한 창간호로 출범했다.

전라일보는 1988년 8월 12일과 10월 10일 등 중간 중간에 소식지인 전라일보 뉴스판(대판 4면)을 통해 전라일보 창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알렸다. 전라일보 창간에는 기업인 황온성씨의 자본금 3억2000만 원 투자가 결정적이었다.

이치백 발행인 겸 사장은 창간사에서 “주어진 언론 사명에 입각, ‘역사의 창조가 어느 선택된 소수가 아닌 무언의 다수’라는 진리를 새로이 인식하고 그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실존의 밑거름이 될 것을 만천하에 거듭 천명한다”고 했다.

창간 축사는 민정당 박준규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등이 했다.

당시 전라일보는 창간호를 36면 발행하며, 지역발전의 선두주자임을 선언했다.

‘창간특집 1’(13~24면)과, ‘창간특집 2’(25~36면)으로 구분, ‘창간특집 1’의 1면에는 백두산 천지에 전라일보 사기를 꽂은 사진을 게재했다.

창간특집 2의 1면에는 비상을 주제로 한 송수남 화백의 한국화와 고은 시인의 시를 올렸다. 또 최승범 전북대 교수(시인)는 전라감사 연재를 시작했다.

본지 3면에서 지역발전을 위한 장기 시리즈 연재에 들어갔다.

두산그룹이 백화양조, 두산유리, 베리나인을 광고했는데, 당시 군산지역 향토주류사인 백화가 두산에 인수됐음을 보여준다.

전라일보는 1994년 6월 전라매일, 1999년 10월 전북제일신문으로 변경되는 우여곡절 끝에 2002년 2월25일 전라일보 제호를 회복했다. 그해 8월 현 유춘택 사장 체제가 됐다.

△전주일보 창간

전주일보
전주일보

전주일보도 1991년 7월 31일 창간호(7월20일 등록번호 가-116) 34면을 발행, 종합일간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사옥은 전주시 우아3동 747-65번지다. 회장 이윤근,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 박계훈, 편집국장 서재철 체제로 출범했다. 창간호 1면 사진으로 전주시 인후동 330-1번지 맹종죽 밭에서 김영채 사진부장이 촬영한 ‘맹종죽(孟宗竹)’ 사진을 굵직하게 실었다.

박계훈 발행인은 창간사에서 “본격 지자제 원년에 탄생하는 신문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 걸쳐 지역사회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강암 송성용은 창간 축하 휘호 ‘논정필직’을 썼다. 또 벽천 나상목 화백의 산수화 하산고은(夏山高隱), 조병화 선생의 ‘민주를 이끌어가는 힘으로’란 축시가 눈에 띈다.

1988년 5월 8일 타블로이드 28면으로 창간된 주간 서도신문의 발행인 이윤근씨가 ‘주간 전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해 발행하다가 일간종합신문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일간 전주일보였다.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1996년 9월 13일 자진 폐간했다.

△지방 일간지 난립 시대

2000년 10월 25일 새전북신문 창간 이후 전주를 기반으로 한 지방일간지는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났다.

전주 기반 지방일간지는 2019년 6월 현재 전북일보(서창훈), 전북도민일보(김택수), 전라일보(유춘택), 새전북신문(박명규), 전북매일신문(전은경), 새만금일보(이재춘), 전북타임스(송민순), 삼남일보(고종승), 전주일보(신영배), 전주매일(조봉성), 전라매일(홍성일), 전민일보(이용범), 전북연합신문(조광래), 전북중앙(강현민), 호남제일신문(김만중), 전북금강일보(김병학) 등 16개사이다.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 전북일보 선임기자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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