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부음에 가슴이 먹먹하고 어리둥절합니다.
두어 주 전 문병을 갔을 때 중환자실에서 잠깐 얼굴을 뵙고, 곧 형님의 퇴원 소식을 기다리던 중에 뜻밖의 부음 소식이 웬일입니까?
형님을 처음 뵈온 것이, 대학시절 도전 시상식에서였고, 그때 아담다방 개인전에서 처음 형님의 작품을 대했었지요.
병아리 교사 시절 미술교사 연수회에서, 그 시대에 귀했던 블루진에 담요를 걸친 웨스턴 영화 건맨 스타일의 형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형님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형님이 마흔 되던 해 휴열이가 ‘마흔’이라고 놀렸던 때가, 우리의 청춘이었던가 봅니다.
술과 그림이 인생의 전부처럼 산 남편과 살았던 형수님도 맘고생 하셨을 겁니다.
술에 취하면 까칠한 형님의 성격을 때론 받들기 힘든 때도 있었지만, 형님의 풍류와 때 묻지 않은 심성,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움, 예술의 천재성, 비굴하지 않은 형님의 성품은, 선배·동료 특히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 형님을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제가 형님의 작품 속에 현대인의 문인화적 정서와 고향의 향수가 있다고 얘기했을 때, 형님의 좋아하시던 그 표정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만 그리는 것보다는, 감성에 겨워 붓을 잡아 그때그때마다 작품 속에 나타나던 형님의 그 재능은, 타인에게는 없는 형님만이 가지신 소위 ‘예술의 천재성’이었습니다.
이승의 팔순전(八旬展)을 150호 캔버스에 일곱 작품으로 전시하겠다던 형님의 그 계획은 하늘나라 데뷔전이 되는 겁니까?
저는 50대에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냈고, 60대엔 형제보다 가까운 후배를 떠나보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둘도 없는 친구도 떠나보냈고, 올 여름에는 이제 형님까지 떠나가십니다!
이제 저의 생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절감합니다. 우리 머지않은 날 다시 만나겠지요?
이젠,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는 천상에서, 드넓은 저 푸른 하늘을 캔버스 삼아 맘껏 붓을 휘둘러 그리고 싶으셨던 그림도 많이많이 그리시고, 드시고 싶으신 술도 많이많이 드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이렇게 준비도 없이 엉겁결에 떠나셔서, 그곳에 잘 적응하실지 염려됩니다. 아무쪼록, 아직은 낯 설을 그곳에 잘 적응하세요.
지금은 어리둥절하여 잘 모르겠습니다만, 살아가면서 많이많이 그리울 것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형님.
/박종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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