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4 06:43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자체기사

치열한 삶 살아온 이산자…재일교포 서경식 명예교수를 기억하다

지난해 12월 별세한 재일교포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의 고국땅 전주 서 추모식 열려
생전 한일 양국, 국가주의·식민주의 넘어서길 촉구, 고인 기억하기 위해 전국 각지서 발길

image
21일 전주시 고백교회에서 열린 재일교포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서경식 선생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로 이해됩니다.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감성이 누구보다 예민했기에,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지속적으로 발언을 해달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러면서 그를 고통의 장안으로 몰아넣은 공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1일 재일교포 고(故)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의 추모식 ‘서경식님과의 동행’에 참석한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의 말이다.

향년 72세의 나이로 지난해 12월 18일 우리의 곁을 떠난 고인은 재일조선인 2세다. 그는 고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산자(디아스포라)로서 한일 양국에 국가주의·식민주의를 넘어서기를 촉구해 온 인물이었다.

고인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났다. 이후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1971년,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형 서승과 서준식이 군사정권의 간첩 조작 사건인 이른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는 일을 겪었었다. 

잔혹한 고문을 받으며 1980년대 말까지 오랜 세월을 옥중에서 보낸 형을 위한 구명 운동을 바탕으로 고인은 민주화 운동과 일본인의 역사적 책임 등을 묻는 저술과 사회 활동에 평생을 힘써왔었다.

이처럼 이방인이자 소수자인 재일조선인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한 ‘디아스포라 지식인’ 고(故) 서경식 교수를 기리는 추모식이 21일 전주고백교회당에서 열렸다.

이번 추모식은 지난 2011년부터 고인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온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와 한상열 고백교회 목사, 고인의 형인 서승 씨가 고인을 한국의 땅에서 추모하며 기억하기 위해 마련했다.

추모식을 기획한 정주하 교수는 “지난해 별세 소식을 듣고 선생님께서 계신 일본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일본 절차에 따른 장례를 치렀다”며 “하지만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셨던 선생님의 생전 뜻을 기리기 위해 한국 땅에서 추모의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고인의 형인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와 고인의 아내인 후나하시 유코 씨,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 한상열 고백교회 목사 등을 비롯한 30여 명의 방문객이 자리했다.

서울·대구·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추모식을 찾은 이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전하며 소개했다. 

image
21일 전주시 고백교회에서 열린 재일교포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이후 추모 공간 한가운데 놓인 고인의 유품인 검정 중절모가 얹혀 있는 소나무 조각을 둘러앉아 서로를 마주보며, 고인을 기억했다. 

방문객들은 고인과의 관계, 인연 등 모두 달랐지만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하는 마음은 닮았다.

이날 고인의 형인 서승 교수는 ”타인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며 살아온 막냇동생이 먼저 떠날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동생은 제 마음속 나만의 경식으로 존재하듯, 다른 이에게는 저마다 다른 경식이 존재할 것이로 생각한다. 각자의 서경식을 품고, 동생에 관한 기억을 간직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경식 #재일교포 #인권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