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최초 발견된 저온석축저장고의 놀라운 기능성
백제의 대외교류 관련 유물 생활유적에서 출토
지난 2022년 익산에서 최초로 백제시대 실제로 사용된 대형 '저온 석축저장고'로 추정되는 생활유적이 발견돼 일반 학계 및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크게 회자된 적이 있다.
해당 유적은 '傳 서동 생가터'(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373-7번지)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중 우연히 발견된 유적으로 벼루편 뚜껑․토기․인장와 등 다양한 백제시대 유물과 더불어 2기의 저장고가 발굴된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제1호 저온고 바닥에서 재배곡물(복숭아․참외․들깨) 및 채집작물인 과일(딸기․포도․산뽕나무․다래)의 씨앗이 수습되었고 제2호 저온고에서도 재배곡물(밀․조․팥․참외)와 채집작물인 과일(포도․다래) 수습된 것이다.
△1호 : 488.1(장축)×243(단축)×230.6(깊이)㎝규모/통기구 3개소, 벼루편‧대부완‧뚜껑‧전달린 토기(완), 인장기와 등 출토, 재배작물(복숭아‧참외‧들깨), 채집작물(딸기‧포도‧산뽕나무‧다래) 씨앗 수습
△2호 : 527.6(장축)×251.2(단축)×240.9(깊이)㎝규모/통기구 3개소, 대부완, 호편, 인장기와 등 출토, 재배작물(밀‧조‧팥‧참외), 채집작물(포도‧다래) 씨앗 수습
더불어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 저장고는 왕도였던 공주 공산성과 부여 관북리유적 등 궁궐로 추정되는 유적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이번에 발견된 저온저장고도 왕실과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높아 백제 왕실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졌고 특히 목곽이 아닌 석축저장고가 처음으로 익산에서 발견되어 유적의 희소성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특히 2기의 석축저장고는 동쪽 장벽 상부에 3조의 통기구가 있는데 이는 쪼갠 돌인 판석과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하여 50㎝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밖에서 안으로 19도~ 23도 기울여 동쪽으로 돌출하게 조성함에 따라 저장고 안 위쪽의 더운 공기를 자연스럽게 배출하고 저층 내부온도를 차갑게 유지하는 공법이 확인되는 등 타 지역의 저장고와 확연한 차이점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사료 됐다.
또 지난해 이 발굴유적에서 ‘직구단경호’와 뚜껑 덮인 토기가 이미 발굴된 굴립주 건물지 초입부 구덩이(길이 104cm, 너비 91cm, 깊이 34cm)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 내부에서 발견된 ‘오행대포(五行大布)’ 5점이 ‘+’자 형태로 놓여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땅의 악한 기운을 누르고 선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묻은 지진구(地鎭具)로 추정된다.
직구단경호(直口短頸壺)는 곧은 입에 목이 짧은 항아리를 말하며, 굴립주건물(掘立柱建物)은 땅 위나 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 만든 건물로, 지표면 위에 생활면을 설치한 건물 모두를 총칭한다. 또 지진구(地鎭具)는 국가의 중요한 건물 등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빌기 위해 매납하는 물건이나 제기(祭器)를 뜻한다.
아울러 오행대포(五行大布)는 574년 북주 무제가 발행한 화폐로 577년 백제 위덕왕에게 희사한 예물로 삼국사기 백제본기 5 위덕왕 24년조에 기록이 있다.
결국 굴립주건물지는 북주의 위세품(지진구)을 기둥에 매납할 만큼 중요한 건물지였으며 무엇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건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더불어 지진구안에서 출토된 '오행대포'전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바가 없는 중국 동전으로 백제가 북주와 대외 교류를 했다는 문헌기록을 증거하는 자료이다.
실제 '【周書】 券6 武帝宇文邕 : "(建德6년, 577) 十一月庚午,百濟遣使獻方物"→ 십일월 경오일에 백제사신에게 방물을 헌사하다는 내용이 있고 【周書】 券7 宣帝 : "(宣政元年, 578) 冬十月戊子,百濟遣使獻方物" → 겨울 10월 무자일에 백제 사신에게 방물을 헌사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발굴현장과 관련하여 삼국시대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으나, 야사인『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무왕 어머니의 기거를 위해 '마룡지에 축실(집을 짓다)' 유적이나, 무왕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오금사' 그리고 무왕의 생가터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는 '용골'등의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발굴성과와 설화의 내용이 너무 상이하여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발굴성과로 나타난 건물지와 부장유물 또 석축저온저장고의 유적을 반추해볼 때 ‘전 서동생가터’유적은 추가적 연구가 필요해 보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밀발굴조사 결과를 지속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영일 백제문화센터 파견 전북특별자치도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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