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원시가 제작한 새 춘향영정 두고 논란 지속
시민단체 및 지역 국악인 중심으로 교체 요구 속출
미술 전문가 등 일각에선 쓸데없는 행정 낭비 지적도
지난해 새로 제작된 춘향 영정을 두고 남원이 둘로 갈라졌다.
새 영정이 완벽한 고증을 거친 수작이라는 입장과 춘향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만큼 다시 제작하거나 최초 영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비판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주말 오전 남원시 동충동 광한루원. 체감온도 33도를 기록한 무더운 날씨임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 중 몇몇은 광한루원 동편에 위치한 춘향 사당을 흥미롭게 살피는 모습이었다. 춘향 사당에는 지난해 남원시가 예산 약 1억 7000만 원을 들여 새로 제작한 춘향 영정이 봉안돼 있다.
광주에서 왔다는 김모 씨(34)는 "춘향 영정을 실제로 보니 못생겼다는 소문과 달리 생각보다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김 씨의 의견과 달리 현재 새 춘향 영정은 지역사회의 거센 비판에 바람 잘 날이 없다. 광한루원 입구에는 지역 시민단체가 내건 '새 영정을 교체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앞서 시와 남원문화원은 지난해 5월 제93회 춘향제에 맞춰 새로 제작된 춘향 영정을 광한루원 춘향 사당에 봉안했다.
새 영정은 세 번째 제작된 것으로 최초 춘향 영정은 강주수 화백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1931년 제1회 춘향제부터 제32회 춘향제까지 춘향 사당에 있었다. 이후 두 번째 영정은 1961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렸지만 2000년대 들어 이당의 친일 반민족 행적이 드러나자 62년 만에 새 영정을 제작하게 됐다.
그러나 새 영정 속 춘향의 외모가 문제였다. 일반인이 납득할 만한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새 춘향 영정이 공개되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팔 청춘이 아니라 40대 월매같다', '이몽룡은 물론 변사또도 도망가겠다'란 비판이 쏟아졌다.
최초춘향영정복위시민연대는 지난 6월 보도자료를 내고 "새 영정은 춘향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고증도 엉망이다. 도저히 10대로 보기 힘든 나이 든 여성의 모습으로 보인다"며 "최초 영정을 다시 봉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달에는 남원 국악인들이 서울시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 모여 "온국민이 사랑할 수 있는 춘향상이 아닌 새 영정을 철회하고 다시 제작하라"며 새 영정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새 영정이 완벽한 고증을 거쳤으며 조선시대 미의 기준에 부합하다는 호평도 적지 않다. 미술 전문가를 중심으로 일각에서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 춘향이라는 가상 인물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누가 그리든 논란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영정 제작은 쓸데없는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지 미술평론가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21세기 서구 미인형에 익숙해진 미적 기준을 들이대면 안 된다"며 "새 영정은 조선시대 한국 미인형에 근접하고 복식 고증과 예술적 완성도도 우수한 작품이다"고 평가했다.
또 이은주 안동대 교수는 지난 달 남원시의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새 영정은 제작 과정에서 금붕채, 옥비녀 등을 사용한 8자형 벌생머리 등 18세기 조선시대 복식을 철저히 반영했다"며 고증 부실 지적을 반박했다.
결국 논란이 계속되자 전북특별자치도의회 문화안전소방위원회는 지난 20일 '춘향 영정 논란 해법 모색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김현철 화백의 춘향 영정의 작품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남원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시 관계자는 "새 영정을 두고 논란이 계속돼 죄송하다"며 "아직 구체적인 교체 계획은 없다. 남원의 대표 콘텐츠인 만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춘향 영정 해법 모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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