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松古高節하고 園花時世粧이라 方其同茂日엔 人咸惜春光이나 春光不可恃니 轉眄已履霜이라
영송고고절 원화시세장 방기동무일 인함석춘광 춘광불가시 전면이리상
고개 마루 소나무는 오랜 세월 높은 절개, 뜰 안의 꽃들은 시절 따라 고운 단장. 소나무도 꽃도 다 무성한 봄날엔, 사람들은 봄이 좋다며 그 봄을 즐기지. 허나, 봄은 믿을 수 없는 것!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서리를 밟게 되네.
조선 말기의 유학자로서 전라북도 부안의 계화도에 은거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낸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이 12구(句)의 배율(排律)로 쓴 〈송(松:소나무)〉이란 시의 처음 여섯 구(句)이다. 봄엔 온갖 풀과 나무가 다 푸르고 전원의 꽃들도 지천으로 피어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봄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봄이란 믿을 만 한 게 못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봄은 가버리고 서리가 내리는 가을을 지나 눈이 날리는 겨울이 되면 봄에 의지하여 피던 푸른 잎과 붉은 꽃, 그리고 그 꽃들이 내뿜던 짙은 향기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다만 고개 마루의 소나무만이 서리와 눈 속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푸른 자태를 잃지 않고 서있다. 얼마나 믿음직스런 모습인가?
이처럼 변함없는 것이라야만 믿음을 줄 수 있다. 소나무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일시의 화려함은 변함없는 '늘 푸름'만 못하다. 그런데, 밋밋한 늘 푸름보다는 시들 때 시들더라도 우선 화려하고 짜릿한 게 좋다는 요즈음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진지한 믿음이 없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다 '깜짝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장차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嶺:재 령 粧:단장할 장 茂:성할 무 咸:다 함 惜:아낄 석 恃:믿을 시 轉:구를 전 眄:곁눈질 할 면 履:밟을 리 霜:서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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