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항(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
새 정부의 출범을 보름남짓 앞두고 한 사회불만자의 방화에 의해 불타버린 국보 제 1호 숭례문의 처참한 모습은 우리 국민 모두를 안타깝고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600여 년 전 조선 건국과 함께 한양(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 그리고 6?25 전란 등 그 숱한 역사의 영욕 속에서도 꿋꿋이 모습을 지켜왔건만, 어처구니없게도 불과 다섯 시간만에 시커먼 숯덩이로 변해 버렸으니 우리 국민이 느낄 참담함을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새 정부가 출범할 즈음에는 매번 모든 사람들이 약간은 들떠있고 희망을 갖게 마련이다.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이른바 ‘글로벌’(global)이라는 단어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위축과 이념에 기반한 지나친 대북지원 등 때문에 과거정부의 세월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 ‘글로벌’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출범은 국민들에게 그야말로 낙관적 기대를 갖게 해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일어난 숭례문 소실은 이러한 희망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분노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절망과 낙담의 기분만을 느껴야 할 것인가? 이제 방화사건이 일어난지도 거의 닷새가 지나 지금은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그 바탕 위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취할 때는 아닌지, 과감히 국면전환을 제의하고 싶다. 특히 미래를 설정하는 기준으로 우리는 새 정부가 내세우는 ‘글로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운영의 큰 지표로 ‘글로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달 28일 이명박 당선인은 한승수 총리를 지명 발표할 때에도 총리 인선의 첫 번째 덕목으로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사’를 꼽았으며 한 총리지명자에 대해 “누구보다도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는 폭넓은 국제적 경험으로 통상과 자원외교 수행의 적격자”라고 밝힌 바 있다. 우물안 개구리식의 국내가 아니라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그리하여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의 기준으로서 ‘글로벌’이 표방되고 있는 것이다.
숭례문 방화사건도 따지고 보면 ‘글로벌’ 의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요한 문화재를 보존하고 지키는데 있어서 세계적 기준에 한참 미흡한 국내적 기준을 따랐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의 첫 번째 보물을 잃은 것이다. 숭례문에는 기본적인 화재방지 장치인 스프링클러도 갖춰져 있지 않았으며 경보기도 없었고, 더욱이 야간에는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어 무단 침입자에 의한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또한 소방당국은 문화재 화재에 대한 자세한 대응 매뉴얼도 없어 눈뜨고 화재현장을 쳐다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적(‘글로벌’) 기준은 어떠한가?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중요 문화재를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꼼꼼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은 매년 1월 26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정해 이날을 전후로 문화재청과 소방청이 나서서 중요 문화재와 관련시설에 대해 실전을 방불케하는 화재 진압 훈련을 한다.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등 이름난 역사?문화 시설을 갖고 있는 프랑스는 이들 시설에 대해 가연성 물품의 반입금지 등 일본보다 더 엄격한 화재 예방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중국도 자금성과 천안문 등에 대해 감시카메라, 연기감지기, 자동 스프링클러 등은 물론이고 40명 이상으로 구성된 자체 소방대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을 강조해야 하는 것은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의 일, 국제사회의 현안에 대해서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지, 또한 중동에서 어떻게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지는가 등에 대해서 수수방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 및 무역대국으로서 세계와 통하고 앞으로 더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보다 더 높은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글로벌’ 기준에 맞는 국가로 나가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참여와 후진국에 대한 공적경제원조(ODA) 제공이다. PKO의 경우, 우리나라는 작년 말 현재 전세계적으로 18개 지역에 400여명을 파견하고 있으나 분쟁지역에 대한 신속한 파견을 이루지 못하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또한 ODA의 경우, 세계적 기준은 자국 국민총샌상(GNI)의 0.7% 이상 제공을 권유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제 겨우 0.01%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세계와 통하고, 그리하여 진정한 일등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문화재 보호에 있어서도 그리고 국제 현안의 관여와 개입에 있어서도 ‘글로벌’ 기준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이서항(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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