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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을 걷는다는 건,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아요"

신정일 우리땅 걷기 모임 대표

▲ '우리땅 걷기 모임' 신정일 대표가 전국 산천을 답사하며 저술한 책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모임' 신정일(57) 대표. 마이너리티,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인생. 스승이 없이 따로 살아온 그는 '길'과 '책'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그의 표현대로 그의 진정한 스승은 자연이고 책이었다. 유홍준이 문화유산 답사의 개척자라면 신정일 대표는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그는 길을 '찾고, 걷고, 잇고'의 '쓰리 고'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5월 '신 택리지' 9권을 완간했다. 발품을 팔아 쓴 역작이다. 지금까지 그가 쓴 책이 59권에 이른다. 차도 없이 버스를 타거나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니면서 천착한 성과물이다. 그는 왜 산천을 떠도는 걸까. 그 많은 책을 저술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전주시 진북동 그의 아파트에서 만났다. 말은 달변이고 내용은 현란했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강연, 행사도 있고 우리땅 걷기 모임 답사 등이 있어 여전히 바빠요."

 

 

-문화사학자, 도보여행가, 우리땅걷기 전도사, 길 전문가 등 여러 표현이 따라 붙습니다. 어떤 게 마음에 드나요.

 

"김지하 시인은 '삼남 일대를 걸어다니는 민족민중 사상가'로,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는 '강, 길의 철학자'로 부르더군요. 저는 문화사학자라는 말이 가장 좋아요. "

 

 

-왜 걷는 겁니까. '걷기 철학' 같은 게 있다면.

 

"사르트르가 말하기를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만 존재한다' 했는데 걷는다는 것은 삶의 근간이죠.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걷기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나를 만나기 때문에 걷는 거죠. 산천을 걷는다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아요."

 

 

-맨 처음 걷기를 시작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화엄사에서 두달간 머물 때 처음 걷기를 시작했지요.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 가출 끝에 출가했는데 스님이 '너는 절에서 지낼 놈이 아니다'며 내보냈습니다.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한 것은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 역사문화 현장을 답사할 때부터였고요."

 

 

-지금까지 걸으신 걸 다 합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아마 수십만 km는 될 겁니다. 낙동강 답사 때 하루 64km를 걸은 적이 있는데 하루에 걸은 거리로는 최장 거리지요."

 

-자가용은 없나요. 운전하실 줄은.

 

"차는 없어요. 운전면허증은 1991년에 취득했는데 한번도 써먹지 못 했어요."

 

 

-불편하지 않나요.

 

"강연이나 답사 때 여러권의 책을 갖고 버스에 오릅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산천도 구경할 수 있어 좋아요. 불편하지 않습니다."

 

 

-'길 만들기' 사업을 맨 처음 전북도에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시작한 걸로 아는데요.

 

"변산 마실길을 제안해서 김완주 도지사랑 같이 걸었는데 그 때뿐이에요. 내변산을 한바퀴 도는 마실길(100km)은 1년이면 되는데 지금까지 안 돼 있어요. 제가 제안해서 2008년 만들어진 소백산자락 마실길(200km)은 문체부가 생태탐방로 1위로 선정했습니다."

 

 

-걷기 열풍이 불면서 길을 만들고 새로난 길에 연중 사람이 몰립니다. 환경 훼손을 우려하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능선이 아니기 때문에 훼손이 심각한 건 아닙니다. 다만 쓰레기 처리 같은 것은 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가져야겠죠. 외지인들이 찾아오면 소득과 관광효과도 있기 때문에 공익요원이나 별도 인력을 운영할 필요는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고요."

 

 

-지난 5월 '신 택리지' 9권을 펴냈고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라는 책도 쓰셨습니다. 산하를 주유하면서 이중환, 김정호 선생과 교감했을 법 한데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김정호는 후원자가 있었지만 이중환은 역모죄로 몰려 국문을 다섯 차례나 받았고 유배당해 떠돌았습니다. 고난과 절망을 딛고 큰 일을 해낸 뛰어난 분들입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요. 그 분들을 생각하면서 국토를 답사했고 새롭게 글로 남기기 위한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기좋은 곳 33' '꿈 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 등 발품을 팔아 쓴 글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추천하신다면

 

"봄에는 무주 부남에서 읍내 용포리까지의 금강길, 그리고 섬진강 길도 좋습니다. 전주에서는 건지산에서 전주천까지 이어지는 건지산길이 좋아요. 4시간 정도 걸리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편백숲만 얘기하던데 단풍나무 숲이 너무 좋아요."

 

 

-다작(多作)을 하시는데 지금까지 저술한 책은 몇권이나 됩니까.

 

"김지하 시인은 '글 쓰는 것도 때가 있다. 잘 써질 때가 있고, 아무리 쓰고 싶어도 쓰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글이 써질 때 막 써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 같아요. 쓰다 보니 쉰 아홉권이나 됐어요. "

 

 

-가장 최근에 쓴 것은 어떤 책입니까.

 

"'가치 있게 나이 드는 연습'이란 책인데 이달에 나왔습니다. 독서, 걷기, 사색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이라는 부제가 붙은 에세이입니다. '허균과 형제들'이란 책은 이달 20일까지 원고를 넘기기로 했는데 잘 써지지 않아 애를 먹고 있어요."

 

 

-'한(恨)이 많은 사람이 글을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한이 쌓여 있길래 이렇게 많은 글을 쓰시는 겁니까.

 

"자기 전공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권 정도 책을 쓸 수 있고 출판기념회도 할 수 있어요. 두권째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하지만 세권 이상은 한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봐요. 나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취직 한 번 못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호기심이 많았고 시대정신을 잘 읽어낸 것도 글 쓰는 데 도움이 됐어요."

 

 

-책이나 대화에서 세계적인 문호, 철학자, 사상가, 정치인들의 말과 글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시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머리가 좋은 겁니까 아니면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겁니까.

 

"외톨이였던 어릴 적 책 읽는 게 유일한 행복이었어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 설레는 마음으로 연애하듯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 2~3만권은 읽었을 겁니다. 저자는 책에서 주안점을 두기 마련인데 그것을 꿰뚫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를 천재라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IQ 검사를 한 적도 없고 우등상 한 번 탄 적이 없어요."

 

 

-매번 길을 떠나고 책을 내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산다는 것은 떠도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죽는 것이라고 해요. 머무르면 안되지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광풍'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주인공인 매월당 김시습이 떠돌아다니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매료됐어요. 지금 산천을 떠돌아다니며 살고 있는 걸 보면 어린 날 처음으로 접한 책의 영향이 크다는 걸 느껴요."

 

-답사나 글쓰기 말고 다른 취미는 없나요.

 

"가난했지만 취미는 고상했어요. 고전음악 듣기를 좋아합니다."

 

 

-산천을 답사하는 전문가로서 우리나라 산천에 대한 관(觀)이나 느낌을 말한다면 어떤 것입니까.

 

"정신이란 모습 속에 있는데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어떻게 정신이 나오겠습니까. 산천을 답사하다 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껴요."

 

 

-어려운 가정환경, 일천한 정규 학력, 가출과 출가, 자살유혹 등 불운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지금의 신정일을 있게 한 건 무엇일까요.

 

"고시를 준비했다면 잘 됐을 것이라고 농을 던지기도 하지만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돈이나 명예, 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글 쓰는 것만 고민해 왔지요. 흐트러지지 말자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며 살자고 끊임없이 다짐해 왔어요."

 

 

-그동안 취직한 적이 없고 월급 타 본 적이 없는데 생활은 어떻게 해오신 겁니까.

 

"강연이나 글쓰기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됐고 집사람이 교직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지금은 명퇴했지만."

 

 

-많은 책을 저술하셨는데 인세(印稅)도 상당하겠군요.

 

"많지는 않고 먹고 살 정도입니다. 직장인 수입 정도예요."

 

 

-1981년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에 끌려간 적도 있던데 무슨 일 때문이었나요.

 

"전북대 앞에서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카페를 운영했을 때인데 운동권 학생들이 드나들었고 불온서적을 탐독했다는 이유를 들어 간첩단 사건으로 엮였어요. '김대중이 한테 돈을 얼마 받았느냐', '북한을 몇 번 갔다 왔느냐' 대라며 발가벗겨진 채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름이 당초 춘석(春錫)이었는데 '맵고 바르게 한 길을 가라'는 뜻으로 이름을 스스로 신정일(辛正一)로 바꾸었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스님이 '그 이름 걸머지고 사느라 힘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열여섯살 때 지어 후에 호적에 올렸는데 이름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달리 살 방법도 없고…. "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해도 괜찮겠습니까.

 

"내 인생은 아웃사이더예요."

 

 

-과거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인생으로 평가되길 원하십니까.

 

"그러나요? 열심히 산 인생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하렵니다. '길의 날'을 제안해 성사됐고 길 축제도 만들었습니다. 길을 좋아했기 때문에 객사(客死)하면 더 없는 행복이지요."

 

 

-작년 6월에 펴낸 '느리게 걷는 사람'은 열아홉살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후의 인생이야기가 또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연작 계획은 없나요.

 

"그런 요청을 많이 듣습니다. 준비하고 있어요."

 

 

-구상하고 있는 답사나 저술 계획이 있다면.

 

"내가 좋아했던 '김시습 평전'을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감성을 일깨우는 책을 쓰고 싶어요. 부산 해운대에서 동해바닷길 1400km를 걸어 두만강 하구에 이르는 '해파랑길'을 만들었는데 북한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생전에 밟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차 오르겠습니까."

 

신정일 대표는 이 길을 조성해 줄 것을 문체부에 제안했고 문체부는 2010년 9월 이 길을 '해파랑길'로 선정해 발표했다. 신씨는 나아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러시아 해변을 돈 뒤 스웨덴, 스페인,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이어지는 세계 최장거리 도보 답사코스를 문체부에 제안했다.

 

 

-산천 주유, 길 답사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생의 길은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까.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인데 공동체 마을을 만들 계획입니다. 살아 숨쉬는 새로운 문화, 민속촌이나 마을만들기와는 전혀 다른 새 패러다임의 공동체 문화를 구상하고 있어요. 제주도와 육지에 한 곳씩을 선정해 모든 문화체험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곧 발기인을 모집해 재단법인 형태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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