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청서 선수로 활약하다 92년부터 활 제작 / 각궁 탄력 뛰어나 다른 나라 활보다 작지만 강해 / 국궁 인구는 늘어도 소량 생산으로 생계 어려워
국궁(각궁) 장인 권오철(55)씨는 귀찮다며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 짧고 퉁명스런 경상도 억양의 이 사나이는 기자의 괴롭힘에 못 이겨 세 번 고사한 끝에 수락했다. 지난 10일 전주 다가산 밑 활터 천양정(穿楊亭) 인근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지난 겨울 제작해둔 국궁 수십 여 개를 매만지고 있었다.
경북 예천 출신인 그가 전주에 터를 잡게 된 것은 1992년 전주시청 국궁선수로 발탁되면서부터. "전국적으로 이쪽 선수들의 실력이 월등했다. 너도나도 여기에 오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다.
국궁을 제작했던 아버지는 밥벌이가 안 된다며 아들이 이 길을 걷는 걸 반대했으나 결국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개량궁도 쏴 봤지만, '살아 있는' 국궁만큼 매혹적이진 못했다. 초보자가 요령 없이 다루면 부서지기 쉬울 만큼 관리가 까다로운 국궁은 개량궁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비싼 데다 5단 이상의 숙련자만 사용할 수 있다.
"활을 쏘기 전에 활을 올리는 과정이 더 중요하거든요. 시위를 활에 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우선 활을 약 25~26℃가 되는 곳에 1시간 정도는 놔둬야 시위를 걸기 좋은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러지고 말아요. 숙련자라 하더라도 이것을 잘못 조절하면, 활이 다른 곳으로 빗겨 나가기 십상이죠."
국궁은 뽕나무 또는 대나무에 물소의 뿔을 붙이고, 스프링 역할을 하는 잘게 찢은 쇠심줄을 안팎에 둘러 탄력을 더한다. 접착제는 민어부레풀. 이처럼 자연 재료로 만드는 '생궁'(生弓)이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고 했다. 그는 "영국 장궁이나 일본 죽궁 등은 탄력이 낮은 한 가지 소재로 만드는 반면 우리나라는 다양한 재료를 쓰기 때문에 탄력성이 뛰어나다"고 했다. 이처럼 '작지만 강한 병기'에 맛을 들인 고수들은 절대 눈을 돌리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국궁과 양궁의 공통점은 차이점은 뭘까. 몸과 마음 어느 하나라도 중심이 흐트러지면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는 점은 국궁이나 양궁이나 마찬가지다. "활쏘기를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반면 국궁은 과녁까지 거리가 145m, 양궁은 70m에 불과하다. 국궁은 엄지손가락에 뿔 깍지를 끼워 어깨까지 당겨야 하지만, 양궁은 가죽으로 된 핑거 탭을 검지와 중지에 끼운 뒤 턱까지만 당겨도 된다.
국궁 제작 장인인 그는 국내 유수한 국궁대회에 출전해 최고 기량을 자랑한 선수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취미 삼아 대회에 나가곤 하지만, 이전엔 전국체전 개인·단체 금메달을 비롯해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국궁 부문 장원까지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대한궁도협회가 인정하는 9단 인증자는 그를 포함해 전국에서 50여 명에 불과하다.
국내 활쏘기 인구는 3만5000명, 도내는 약 1000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는 "최근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국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스포츠로 바라보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했다. 이처럼 국궁의 대중화에 대해선 반색하는 그지만 정작 국궁 제작 장인이 되겠다고 달려드는 것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친다. 5개월 이상 1000번 이상 손이 가야 하는 국궁 제작은 들이는 공에 비해 대우가 그에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자들의 적극적인 구애도 달갑지 않다는 것. 그러나 활은 때가 되면 시위를 힘껏 당겨 화살을 멀리 떠나보낸다. 시위 떠난 화살은 혼자다. 그가 숙명처럼 화살을 맞았듯 또 누군가에게 건네야 할 운명의 화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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