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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의원은

앵커시절 '클로징 멘트'로 유명세… 민주당 前 대변인

 

1953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북중과 전주고를 나왔다.

유년과 소년시절을 즐겁게 보낸 고향 전주를 아끼고 자랑스러워한다.

어린 시절 그는 신문기자였던 아버지(전북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신현근씨) 덕분에 많은 책을 읽었다.

문학전집류부터 <조선총독부> 같은 정치물까지 집에 있는 책은 가리지 않고 읽었지만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로는 특별히 잘하는 것 없는 평범한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정직하고 바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적은 ‘중 상’정도 유지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달라졌다.

서울대에 가고 싶었지만 ‘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겠다’고  깨달은 후 밤새워 공부하기 시작한 결과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에는 전체 10등 권에 들었다.

국어 사회 영어는 상위권이었으나 수학과 과학 성적이 형편없어 서울대 사회학과를 선택했다.

독재의 엄혹한 70년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거리로 나가지 않고 공부에 열중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지적세례에 흠뻑 빠졌다.

적극적인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독재가 얼마나 국가를 피폐하게 하고 인간을 파멸로 내모는지를 직시하면서 독재를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혁명’이란 단어는 그때 그의 가슴을 울렸던 단어다.

군대에 다녀와 취직할 곳을 찾다가 몇 년씩 공부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언론사에 응시했다.

1981년 엠비시 기자가 됐다.

기자로 지내면서도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갈래는 고민하지 않았다.

권력과 기득권과의 싸움을 원칙으로 삼았을 뿐이다.

1986년부터 크고 작은 뉴스 앵커로 활동했으며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고, 법조와 외교 분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8년 3월부터 엠비시 9시 뉴스 앵커를 맡아 ‘클로징 멘트’의 의미와 가치를 시청자들에게 안겼지만 그 때문에 온갖 압력과 핍박, 수모를 당했다.

그래도  버텨 정년을 채우고 퇴직했다.

은퇴이후 민주당 프러포즈를 받아 입당했으며 대변인을 거쳐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텃밭인 영등포지역에 출마, 적지 않은 표차이로 이겨 국회의원이 됐다.

독서량이 큰 자산인 그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를 마음을 움직인 책으로 꼽는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것을 알게 해준 이 책을 통해 그는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됐다.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도 없고, 골프도 하지 않는다.

‘음주가무’와도 거리가 멀다.

그래서 기자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꼭 노래를 불러야 할 때는 송창식 노래를 부른다.

앵커시절 클로징 멘트도 그랬지만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모든 글은 직접 쓴다.

특별히 글에 염격해서 의원실 참모들을 긴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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