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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쓰레기 줍는 할아버지' 권호석씨 - "문화국민 됩시다" 43년째 거리 청소

전국 축제장·전통시장 누비며 환경보호 실천…행사장 사례비·용돈 모아 지역학생 장학금도

▲ 43년 동안 '쓰레기줍기' 외길인생을 걸어온 장수 천천면 권호석씨가 지난 8일 5일장이 열린 장계시장에서 스레기를 줍고 있다.

장수지역은 물론 전국을 누비며 쓰레기를 줍는 권호석씨(76·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의 별명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쓰레기통 할아버지', '전국구 미화원', '거리의 천사', '김삿갓' 등이 권씨가 보여준 그동안의 행적을 말해준다.

 

올해로 벌써 40년 넘게 거리청결에 여념이 없는 권씨는 1년 365일 거의 매일 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인파가 몰리는 전국의 축제장과 행사장은 물론 재래시장과 길거리를 누비며 환경보호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난 8월 폐막한 여수엑스포에서도 권씨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여수엑스포에서 권씨는 당시 20일 동안 찜질방에 기거를 하며 쓰레기줍기에 나섰다.

 

예전에는 쓰레기더미 옆에서 스치로폼을 깔고 종이박스를 덮고 노숙을 하며 끼니를 거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주위 분들이 도와주고 자식들이 장성해 용돈까지 줘 한결 봉사활동에 나서기가 나아졌다.

 

지난 8일 5일장이 열리는 장수 장계시장에서도 그는 '서로서로 양보하고 기초질서 잘 지켜서 문화국민 됩시다. 내가 지킨 기초질서 아들딸이 본받아요. 내가 머물던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갑시다. 담배꽁초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와 비닐봉지, 집게를 들고 거리를 누볐다.

 

그는 이미 전국의 행사장과 축제장의 마스코트로, 거리의 환경 전령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의 쓰레기줍기는 43년전인 지난 1969년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그의 작업에 대해 모두가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초기에는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일을 뒷전으로 미룬 채 축제장만 쫓아다닌다'라거나 '미친X'이라는 험한 소리도 들었다. '자기가 무슨 환경운동가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온갖 비난의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거리 청소를 실천해 온 그의 한결같은 모습에 차츰 많은 사람들이 감화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어른들 뿐 아니라 꼬마들도 그를 반갑게 알아보고 있다.

 

그가 43년동안 '쓰레기줍기' 외길인생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가족들의 든든한 후원에서 비롯됐다.

 

33살이었던 그는 11살 연하의 부인 김정숙씨와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청소봉사'라는 사명감을 앞세워 쓰레기줍기에 나섰다. 당시 부인 김씨는 말없이 그를 지켜봐주며 소리없는 응원에 나섰다.

 

그는 "무엇보다 5남매가 아버지의 행동에 한마디 불평 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모두가 장학생으로 대학까지 마치는 등 올곧게 성장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14살에 6·25전쟁이 터졌어요. 군대에 들어가 조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싶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3번이나 입대를 퇴짜 맞았죠. '가진 것은 없지만 이 한 몸 바쳐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던 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집에는 방마다 태극기가 걸려있고, 주머니에는 1년 365일 태극기가 들어있다.

 

아침에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함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는 "최근 독도 문제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하더라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권씨의 선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시대 일본식 이름이 불려지는 게 싫어 선생님께 반항을 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각종 행사장에서 주는 사례비와 자녀들이 준 용돈을 모아 매년 장수지역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제3회 초아의 봉사대상' 사회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상금으로 받은 1000만원을 전액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권씨는 "후세에 백 마디의 말보다 한 가지라도 실천하라는 교훈을 남기고 싶다"며 "우리나라 국민이 세계에서 부끄럼 없는 일등 문화국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오라는 곳은 없어도 못 다한 아쉬움이 많아 또 다시 길을 나선다"면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기력이 남아 있는 한 쓰레기 줍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권씨는 지금도 쓰레기를 찾아 거리청소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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