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정책 고민, 전주시 행정 변화 이끌어 / 국회의원실에 전화 걸어 탄핵 동참 촉구도
불편하게 조성된 자전거 도로를 보고 모두가 무심코 지나갈 때 그는 “이건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대 중고생까지 “박근혜 탄핵하라!”를 외칠 때 그는 국회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탄핵 하실 겁니까?”라며 탄핵 동참을 촉구했다. 한의사 김길중 씨(50)의 유별난 행보다. 그는 왜 그리 독특한 행보에 나서고 있는 걸까.
“전주에서 길을 지나다 보면 자전거 타기가 매우 답답하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는데, 아무도 건의를 안 합니다. ‘괜히 말했다가 손해 보는 거 아니야?’ 걱정만 하는 거죠.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제가 하나 둘 행동에 나섰죠. 막상 해보니 별거 없더라고요.”
완주 출신으로 전주고와 우석대 한의대를 졸업한 길중 씨는 1997년부터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생태도시에 대한 관심이 컸던 그는 2012년 전주에 한의원을 개업하면서 타고 다니던 차를 팔고 자전거를 이용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생태교통시민포럼에 운영위원으로 참가해 매달 대중교통과 보행 환경의 처지를 이해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는 특히 “도로는 차에 전속된 공간이 아니다.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달라”는 기조로 ‘자전차가 전주에게 길을 묻다(이하 자전차 시민행동)’라는 시민모임을 출범시켜 눈길을 끌었다.
자전차 시민행동은 매주 토요일 아침 전주 덕진공원에서 모여 전주시청까지 도로 1개 차선을 이용해 자전거 주행을 한다.
자전차 시민행동의 활동에 관심을 보인 김승수 전주시장도 행사에 참여했는데, 이 자리에서 길중 씨는 “지금의 자전거 도로가 인도 위에 겸용도로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보행자나 자전거인들 모두가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김 시장은 “주말에 한시적으로 백제대로와 기린대로 1개 차로를 자전거 전용 차로로 만드는 방법 등 다양한 자전거 정책을 고민 중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길중 씨의 노력 덕분에 전주시는 6일부터 자전거정책과를 신설하는 등 자전거 사업에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바뀐 시정이 꼭 저의 활동 때문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죠. 그러나 20년 넘게 유지해온 낡은 자전거 정책을 이제는 손을 봐야겠다는 전주시의 의지는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모두가 바다에 가라앉는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던 2014년 4월 16일. 길중 씨는 미증유의 사태에 입을 열지 못했다. 5월 초부터는 길중 씨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 주말마다 한옥마을에서 ‘침묵의 행진’을 시작했다. 적게는 5~6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행진은 같은 해 12월까지 이어졌다.
“가라앉는 세월호 앞에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잊지 않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는 행진에 참여한 시민 중 300명에게 각 1만 원씩을 모아 풍남문 광장 신협 앞 화단에 세월호를 기념하는 한 그루의 산수유 나무를 심었고 이 나무는 매년 4월 꽃을 피우고 있다.
2016년 모든 국민이 공분을 산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길중 씨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국회의원실에 전화를 걸었어요. 대략 40여 명에게 전화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하느냐’고 물어봤는데, 당시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실은 ‘그렇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고민 중이라며 답변을 회피했어요.”
이동을 할 때 수도권은 대부분 대중교통을 떠올리는데, 전주는 택시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길중 씨. 누구나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선을 행동에 옮긴 실천력은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아픈 세월을 걸어온 만큼 올해는 희망을 품어본다는 길중 씨는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진 유럽의 선진국들도 시작은 시민들의 소소한 행동에서부터 였다”며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마음가짐을 이어가겠다”고 새해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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