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관문이자 서해안 제일의 무역항인 인천항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하며 근대화의 관문이 되었던 인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우체국, 세관과 호텔 등 ‘대한민국 최초’라는 역사를 수없이 탄생시켰다. 1899년에 개통해 2019년 황금돼지해를 맞아 12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인천역’에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열한 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김영철의>
인천 속 작은 중국을 만날 수 있는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중국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중국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100년이 넘은 이 거리에서는 오늘도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화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350℃를 오가는 화덕의 열기 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에도 수백 번 항아리 속에 팔을 집어넣어 만두를 굽는 주인 곡창준 씨. 사라져 가는 중국의 음식문화를 알리고 싶어 만두를 옹기에 직접 굽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배우 김영철은 갓 구운 화덕 만두를 맛보며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만둣가게 주인이 연신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떠올린다.
인천은 개항을 통해 외국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외국인들의 거주 공간인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 부근에는 중국과 일본 조계지의 경계가 되는 계단이 있다. 계단의 좌측은 중국식 석등, 우측은 일본식 석등이 일렬로 나란히 놓여있는 청일조계지 계단. 계단 좌측에는 중국의 차이나타운 거리가, 우측 너머로는 일본식 목조 건물을 볼 수 있는 거리가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중구 거리에는 다양한 화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배우 김영철은 진열장 위에 알알이 구슬이 박힌 독특한 신발을 구경한다. 이 신발은 중국 스타일의 구두를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게 개량해 100%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다는데. 화교 2세인 삼 형제가 운영하는 양화점.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격한 아버지에게 신발 제조 과정을 배웠다. 당시는 무척 힘들었지만, 이제는 하루라도 쉬면 몸이 아프다는 42년 경력의 구두장인 형제. 때론 아버지의 가르침이 너무나도 엄격해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건 신발제조 기술만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거주하며 구두를 만들던 2층 작업장을 김영철에게 특별히 공개하는 형제. 그곳에서 배우 김영철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구두를 짓는 형제를 보며 가업이 주는 고귀한 정신을 다시금 느낀다.
후미진 골목 안쪽 낡은 간판 위에 쓰인 이름, ‘인천여관’. 배우 김영철이 쉽게 찾아가기 힘든, 거기에 낡을 대로 낡은 외관과 독특한 간판의 모습에 이끌려 향한 곳은 1965년에 지어진 여관 건물을 개조한 카페였다. 인천항 개항 후 물밀 듯 들어오는 외국인 손님들과 선원들이 묵어갈 숙소가 필요해지자 중구 근처에는 호텔을 비롯해 여관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곳 인천여관은 큰길가에 자리 잡은 숙박업소와의 경쟁에 밀려 쇠락하게 됐다는데. 이곳을 현재의 주인이 카페 겸 음악 감상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제이 부스에 꽂혀있는 수많은 LP판들을 구경하던 김영철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카페를 찾은 손님들을 위해 일일 특별 DJ가 되어본다.
골목을 걷다 발견한 한 낡은 분식집에는 유난히 중장년 손님이 많다. 과거 학창시절 즐겨 먹던 추억의 쫄면 맛을 잊지 못해 또래 친구들과 자식들과 이곳 분식점을 찾는 중년들이 많다는데. 이곳에서 배우 김영철은 쫄면을 먹고 난 후, 식당 주인에게 쫄면 탄생의 비화와 함께 쫄면을 처음으로 만든 제면소를 소개받는다. 이야기인즉슨, 한 제면소에서 냉면을 뽑으려던 직원이 기계 조작의 실수로 굵은 면을 뽑았는데, 그냥 버리긴 아까워 갖은양념을 넣어 먹어보니 쫄깃하고 맛이 좋아 탄생한 것이 쫄면의 시초가 되었다고. 새콤한 쫄면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기계 앞에서 김영철은 예측 불가능한 삶이 주는 행운에 웃음을 짓는다.
인천항 부두를 거닐던 김영철은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대형 곡물 저장고를 발견한다. 이 벽화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 기록 인증을 받은 인천항 곡물 저장고. 아파트 22층 높이의 수입 곡물 저장고 벽화는 16권의 책 표지 형태로 그려졌는데, 어린 소년이 책 안으로 들어가 추수를 끝낸 성인 농부로 성장해 나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인천 유일의 갯벌 포구인 ‘북성포구’. 근대산업의 역사와 함께하는 이곳은 예전부터 북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터를 이루고 살던 곳이다. 북에서부터 배를 탔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를 타는 아들 김춘배 씨. 아버지는 아들에게 힘든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배 타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의 몫까지 짊어지게 된 어머니를 위해 아들은 자연스럽게 그 빈자리를 이어받았다. 유난히 뱃멀미가 심해 배 타는 날마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는 아들.
그런 아들의 고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힌다. 새벽 바다에 아들을 맡기고 편치 않았을 어머니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는 김영철. 바다는 모자의 노력과 눈물에 보답이라도 하듯 싱싱한 꽃새우와 각종 생선을 선물한다.
인천항 개항과 더불어 근대화의 관문이 된 인천. 이곳에 뿌리내려 다채롭게 공존하고 있는 북성동, 신포동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2월 2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제11화. 뿌리깊다 인천항 - 인천 북성동·신포동] 편에서 공개된다. 김영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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