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도시의 시간이 머무는 두 집을 통해 진짜 집의 의미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건축가 문훈과 시인이자 건축비평까지 하는 건축가 함성호. 두 건축가와 함께 집과 사람, 집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유쾌하면서도 지적인 건축탐방을 떠나본다. 한 가족의 시간이 담긴 경북 의성의 흙부대집과 도시의 시간이 담긴 서울 가리봉동의 벌집 속에 담긴 의미를 만나본다.
가족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집
“집이 살아 있으니까 가족같이 느껴요.”
- 김온아 (11살), 김률아 (10살)
경북 의성에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자꾸만 자라나는 집이 있다. 14평에 불과하던 온아, 률아네 집은 4년 만에 40평으로 자랐다. 이 집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온아와 률아, 두 딸의 아빠인 김병준(45) 씨는 2013년까지 1956년도에 지어진 낡고 좁은 촌집에 살았다. 그러다 바로 옆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집을 확장해서 짓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인 그가 발견한 집짓기는 나사에서 개발한 흙부대(흙을 포대에 담아 벽처럼 쌓아 올리는 방식) 공법이었다. 딸들을 위해 집짓기에 도전한 그는 무려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려 흙부대 1만개를 쌓아 올렸다. 그야말로 아빠의 정성으로 지어진 집이다. 14평 옛집과 연결돼 40평으로 늘어난 독특한 구조의 이 집에는 층고가 높은 거실, 빛이 잘 드는 아이들 방, 다락방, 북카페, 루프탑 등등. 어떤 건축가도 흉내낼 수 없는 아빠의 사랑이 깃든 집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이 담긴 집, 가족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집을 통해 진정한 집의 의미를 찾는 건축탐구 여정이 펼쳐진다.
옛 구로공단의 시간이 머무는 가리봉동의 ‘벌집’을 아시나요?
벌집이 벌만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그 공간만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 사람들 누구 하나 원망 불평 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벌집은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눈물어린 추억이죠.
- 최미자 (59)
지금은 중국동포 타운으로 알려진 낙후된 가리봉동은 사실 1975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땅값이 비싼 동네였다. 한국 최초의 공장단지였던 구로공단이 생기면서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청춘들이 모여들었다. ‘공순이’, ‘공돌이’라는 시선까지 감내하며 봉제공장, 가발공장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그들이 잠시 몸을 뉘이던 쪽방이 다닥다닥 붙은 그 집은 이른바 ‘벌집’이라 불렸다. 3~40개의 방이 모인 벌집에는 화장실이 한 개 뿐이라 아침이면 늘 줄을 서야 하는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다. 그럼에도 그 열악한 방에서 청춘들은 뜨거운 희망을 키웠다.
지난 2000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면서 구로공단과 벌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 ‘벌집’을 리모델링해 지금 청춘들의 원룸으로 부활한 집이 있다. 벌집의 특이한 구조는 살리되, 32개의 방은 19개로 줄여 공간을 확보하고, 요즘 스타일로 개조한 집이 등장한 것이다. 그 집에서 또다시 대를 이어 청년들의 희망이 자라고 있다. 켜켜이 쌓아 올린 낡은 벽돌 사이로 우리가 살아온 삶의 시간이 머무는 가리봉동의 벌집! 과거의 시간을 잃어버린 서울의 건축물들 속, 가리봉동의 리모델링한 벌집을 찾아간 두 건축가는 ‘삶의 시간이 머무는 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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