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에 사는 ‘소년 농부’ 양수
여름이면 초록빛 연잎들이 반기는 전남 무안. 넓은 갯벌과 마주한 집에 사는 양수(15)는 새벽부터 염소, 고양이, 닭, 개까지 동물 70여 마리의 먹이를 챙기며 분주한 하루를 시작한다. 곤충이며, 풀이며 모르는 게 없는 자연에서 나고 자란 시골 소년. 하루 4번 버스가 다니는 산골에 살다 보니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도 만만찮지만, 한 살 터울의 동생 승수(14)와 함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걸음을 재촉한다. 부지런해야 먹고 사는 농사일, 양수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기 때문이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어김없이 밭으로 향하는 형제. 풀을 매고 베고, 약 치는 일까지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이 천생 농부다. 할 일 많은 농부의 여름. 어림잡아 농사일 10년 경력의 양수에게도 한여름의 밭일은 부대끼지만, 점점 힘에 부쳐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밭을 떠날 수가 없다.
손자 바라기 할아버지, 할머니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할아버지(77), 할머니(76)는 오늘도 밭에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못 한다. ‘양수만은 일 안 하고 살게 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할머닌, 다만 손자들 학비며 차비라도 벌기 위해 허리 한 번 펼 새도 없이 고단한 하루를 보낸다. 손주들을 품에 안은 건, 8년 전이었다. 병으로 며느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더니 그 충격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들은 지금까지 거동도, 말도 못 한 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겪지 않아도 될 상처를 겪은 손자들에게 제대로 해주지도 못한 미안함에 50년 넘게 갯벌에서 낙지를 잡고 석화를 캐던 할아버지는 오늘도 깊은 진흙 속에 발을 밀어 넣는다. 한 해 한 해 숨이 가빠지는 몸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불쑥불쑥 찾아오는 걱정은 장마철에 내리는 비처럼 속수무책으로 쌓여간다.
양수의 뜨거운 여름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자신들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안타까워 더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그런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양수 형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쉬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더 늦게까지 일을 한다.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문득문득 겁이 나는 양수지만, 그보다도 엄마와 아빠를 잃은 충격에 마음을 닫아버린 동생 승수가 더없이 애처로운 형이다. 동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닳고 닳은 운동화를 바꿔 신어주는 일뿐이지만, 늘 뒤에서 동생을 지키는 형 양수. 청각장애로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할머니와 투박하지만, 손자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힘들지만,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나 밭으로 향하는 양수다. 양수의 여름은, 올해도 뜨겁고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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