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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7. 모악산 소나무의 선물, 김제 송순주

송순주를 빚는 김복순(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호) 씨와 송순.
송순주를 빚는 김복순(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호) 씨와 송순.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애국가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소나무이다. 최근에는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과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편곡된 노래에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는 익숙한 노랫말로 등장하며 커다란 위안을 건네주었다. 주변에 흔할 뿐 아니라 쓰임도 많아서 목재 외에 약재와 식재로도 사용되는데, 우리지역에는 모악산이 내어준 소나무로 빚은 완주의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와 김제의 송순주(松荀酒)가 명주로 알려졌다.

완주의 송화백일주가 소나무의 꽃을 주재료로 사찰에서 즐기던 곡차에서 출발했다면, 김제의 송순주는 소나무의 어린 싹인 새순을 주재료로 집안에서 빚어온 전형적인 가양주이다. 오래전부터 소나무를 원료로 한 술은 다양했지만 이중 특히 송순주와 송화주 · 송근주 · 송실주 · 송엽주 등을 한 데 묶은 술은 ‘오송주’라 불리며 선조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독특한 향과 맛이 탁월한 술은 여러 문구에 등장했으며 제조 방법과 약효를 담은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고려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한 잔의 송료(소나무 술)를 마주 앉아 마시며 / 은근한 정 나누면서 눈물 뿌리네”라는 시구를 남겼다. 고려 시기 중국에서 건너온 독주를 중화하기 위해 곡주를 섞어 마시면서 소나무를 원료로 한 술도 빚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한때 부안에서 왕실의 재목을 관리하는 직책을 역임하며 소나무에 둘러싸였던 이규보도 그 향과 맛을 즐기며 시구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배지인 익산 함열에서 조선 음식을 평했던 허균도 『성소부부고』에 ‘송료’를 언급했으며, 정약용은 『아언각비』에 “송순주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술이다”라며 아예 송순주를 언급하였고, 송순주의 향에 매료된 조선의 문인 김정은 송순주의 맑고 산뜻한 향을 예찬하며 벽향춘(碧香春)이라는 별칭을 지어 『해동잡록』에 시구를 실었다.

김제 송순주로 알려진 송순주는 김제시 요천동 경주김씨 집안의 특별한 사연과 더불어 제조 방법이 전승된 술이다. 경주김씨 집안에 조선 선조 때 병조정랑까지 지낸 김탁은 평소 위장병과 신경통으로 고생했다. 부인 완산이씨는 힘들어 하는 남편을 위해 여러 방법을 찾던 중 산사의 여승으로부터 소나무 순으로 빚은 송순주가 병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제조법을 배워 남편에게 복용시켰는데 병이 정말 호전되었다. 이후 그 소문은 조정에까지 퍼져 궁중에서도 송순주를 약주로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400여 년이 넘도록 경주김씨 집안에서 이어온 김제 송순주는 15세에 시집와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로부터 송순주 빚는 비법을 전수받은 배음숙이 며느리인 김복순에게 전해 주었다. 오랜 세월 동안 송순주가 빚어지지 않은 시기는 6.25 전쟁 때뿐이라 전해지며 주세법에 따른 밀주 단속에서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적은 양이라 할지라도 제사용으로 빚었다고 한다.

 

김제의 송순주(松荀酒). 사진=한국전통주연구소 제공.
김제의 송순주(松荀酒). 사진=한국전통주연구소 제공.

송순주는 제조 기간이 약 100일 동안 정성을 들여 만드는데 그 절차가 까다롭다. 주재료인 송순의 채취가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이른 봄 새로 자란 양질의 송순을 채취하여 시루에 넣어 수증기로 찐 뒤 햇볕에 말려 수분을 제거한 이후에 사용해야만 그 고유의 향과 맛을 지닌 최상의 송순주가 탄생할 수 있다. 모악산 줄기의 청정 소나무와 좋은 물과 옥토인 김제에서 나는 재료들은 최상의 맛을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밀주를 단속하는 시기에는 이를 피하기 위해 송순주를 빚는 날에는 밤잠을 자지 않고, 한밤중이 되기까지 기다렸다가 대문을 걸어 잠그고 고두밥을 짓고 누룩을 디뎠다. 부엌 바닥에 땅을 파서 술독을 묻고는 장작과 솔잎을 덮어 철저하게 감추는 수고를 감내하며 명맥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밀주 단속이 사라진 1980년대부터 집안에서 편하게 송순주를 빚자 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1983년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가 주최한 민속주 심사에서 지역의 최고 술로 인정을 받으며, 이를 계기로 1987년 4월 지방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면서 김복순은 김제 송순주 제조 기능보유자가 되며 한동안 유명세를 탔다.

그런 까닭에 눌제 정재범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술을 계승한 박흥선 명인의 함양 송순주는 김제의 송순주의 명성으로 인해 송순주라 하지 않고 ‘함양 솔송주’란 이름으로 지어져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전의 은진송씨 가문의 술은 ‘대전 송순주’로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서울은 해를 넘긴 송순인 송절을 사용한 ‘서울 송절주’를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명성이 자자한 원조 송순주 격인 김제 송순주는 기능 보유자인 김복순의 작고 이후 그 명맥이 사라졌다.

한동안 김제시와 김제문화원에서 관련 포럼을 열며 송순주 보존을 위해 노력했지만, 자손들이 이어가지 못하며 그 흔적만 지역에 짙게 남겨 놓았다. 김제의 경주 김씨 집안에서 김제 송순주가 전승되지 못한 사정이 경제적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 전해지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악산의 소나무가 내어준 선물에 귀한 사연이 더해져 다져진 전통주의 맥락이 사그라지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 흔적을 후손과 더불어 지역의 자산으로 되찾아내면 좋겠다. 한 모금 머물면 입안에서 감도는 은은한 솔향과 감칠맛이 일품인 김제 송순주가 올곧게 복원되기를 기원하며 그 여정에 힘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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