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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학산(鶴山)이 주는 행복

이우철
이우철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학산을 오른다. 도시에 이처럼 갈 수 있는 산이 있으니 즐거운 일이다. 송정서미트를 지나 망태저수지에는 아침을 즐기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누가 돌보거나 가꾸지 않아도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산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수천년을 이어온 전주의 심장이나 다를 바 없다.

중턱을 넘어가면 전주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보광재가 나온다. 교통사정이 열악했던 시절 완주 평촌사람들은 이 길로 전주까지 시장을 다녔던 곳이다. 촌부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게로 짐을 날랐고 채소를 팔아 어려운 생계를 이어 갔으리라. 수레도 다니며 선조들의 땀방울이 어린 산길, 짐승이 우글거리고 강도들의 은거지이기도 했을 것이다.

학산은 학의 날개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고산을 줄기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의 지형은 아늑하고 평화스럽기 그지없다. 눈, 비가 와도 태풍이 몰아닥쳐도 방패막이가 되었고 예기치 않는 재해를 막을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모악산이 있고 나들이하기 좋은 강천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노년에 은퇴자들이 몰려드는 지역이다.

등산은 진땀을 빼는 한고비쯤 있어야 맛이 있다. 보광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면 깔끄막길이 나온다. 숨이 가쁘고 등짝에 진땀이 젖는다. 내려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뱃살을 줄이고 건강을 위하는 일이니 참고 견뎌야 한다. 때론 중단할까 돌아갈까 갈등이 앞서지만 어디 등산뿐인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렇듯 그 고비를 참고 넘기면 내리막길처럼 순탄하게 풀려지기도 한다.

정상에 오르니 상쾌한 바람으로 몸은 날아갈듯 가벼워진다. ‘구구 욱구구’ 산 비둘기 울음소리는 정겹고, 보랏빛 철쭉꽃이 만발해 있다. 코로나 역병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오르내리지만 눈으로만 가볍게 인사를 한다. 어디 낙원이 별것이던가? 몸속의 묵은 찌꺼기를 땀으로 흘려보냈으니 보약을 매일 한 첩씩 먹은 셈이다.

아내도 제법 선수가 되었다. 처음엔 중간에서 내려가기를 반복했지만 이젠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혼자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가면 멀리갈 수 있다’고 한다. 그간 묵은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 좋다. 부부중 누구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가정의 분위기는 불안해지기 마련이니 나이 들수록 함께 건강해야 한다.

능선을 따라 정수장방향으로 내려오면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공기는 맑고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여유롭다. 도시에 살면서 어찌 욕심을 다 채울 수 있을까만 가까운 곳에 산이 있고 계곡에 물이 마르지 않으니 노후에 이만한 곳도 없으려니 싶다. 마음이 답답할 때,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힐 때 숲이 있고 훌쩍 떠날 수 있는 학산이 있어 행복하다.

 

△이우철 수필가는 순창 출신으로 공무원으로 퇴직한 뒤 「대한문학」에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수필(부회장), 행촌수필, 순창문협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나이 드는 즐거움>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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