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법 등 현안 대응 무기력
재선 의원들 정치적 역할 낙제점
역량 키우고 전북 발전 이끌어야
정세균 국무총리를 처음 만난 건 25년 전이다. 1995년 가을 불쑥 연락을 받고 만났는데 건네 준 명함에는 미래농촌연구소 대표 직함이 찍혔었다. 쌍용그룹 상무를 역임한 실물경제 전문가로서 우리 농촌경제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는 정치적 포부를 피력했다. 그는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경제분야 보강을 위해 영입한 젊은 피로서 고향인 진안·무주·장수 지역구에 출마했다. 이후 18대까지 내리 당선되며 진·무·장에서 전휴상 의원에 이어 4선 반열에 올랐다. 그는 두 번째 금배지를 달 때 “조금 더디고 힘들어도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 먼저 내 그릇의 크기부터 키울 생각”이라며 정치적 야망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의 정치인생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도지사 후보 경선 때 강현욱 의원과 맞붙었다 석패했다. 민주당 도지부장을 맡았었기에 모두 정 의원의 낙승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35표차로 고배를 마셨다. 금품살포와 대의원 명단 바꿔치기 등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그는 깨끗이 승복하면서 통 큰 정치인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후 험지인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6선 고지에 올랐고 전북출신으로는 6번째 국회의장을 역임한데 이어 국무총리를 맡는 헌정사상 초유의 인물이 됐다. 어려운 농촌경제를 살리겠다며 정치에 입문했지만 국가경제를 이끌고 나라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정치 거목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제 의원직은 내려놓았지만 그의 정치적 대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요즘 전북정치권을 바라보면 아쉬움이 크다. 정세균 총리 같은 전북을 대표할만한 정치적 후예들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들이 모두 초·재선인 까닭도 있겠지만 정치인으로서의 행보가 너무 협소하다. 세간에서는 요즘 국회의원들이 예전의 도의원 역할 정도밖에 못한다는 폄훼도 나온다. 비록 선수는 짧지만 패기와 열의가 돋보일 것이란 기대감이 컸으나 지역 현안에 무기력한 모습만 드러내면서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전북정치를 이끌어 가야할 재선그룹의 존재감은 더욱 미미하다. 본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일 때문에 운신의 폭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사태 등으로 당 윤리감찰단 조사를 받고 있는 이상직 의원은 중징계 위기에 몰려있다. 그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검찰 조사가 이어지면서 제대로 의정활동에 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본인 선거와 관련, 친형이 실형을 선고받은 안호영 의원과 민주당 최고위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예상 밖 부진을 보인 한병도 의원도 정치적 동력이 약화됐다. 우려곡절 끝에 전북도당위원장에 선출된 김성주 의원은 원팀 정신 회복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더욱이 지역구 국회의원 10명 중 8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거나 재판 중이어서 좌불안석이다.
이처럼 지역구 의원 대다수가 오비삼척(吾鼻三尺)인 형편이다 보니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남원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 의사단체와 야당에 발목이 잡혀 전면 재검토되는 상황에도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 외에는 목소리를 내는 의원이 없다. 전기차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중국 바이튼사의 위탁생산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군산형 일자리가 좌초 위기를 맞고 있지만 모두 강 건너 불구경이다. 여기에 혁신도시 시즌2와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제3금융중심지 지정, 군산조선소 재가동, 그리고 전국 광역자치단체마다 나서고 있는 초광역권 설정 등 현안과 난제가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무기력하기만 전북정치권이 산적한 현안을 제대로 추스를지 걱정이 앞선다.
한 때 전북정치권은 민주당의 중심이었다. 당을 이끌고 국회와 국정을 아우르기도 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초·재선 의원들이 전북의 정치적 위상을 곧추세우고 전북의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리하지 못하면 다시 금배지 달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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