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광(七狂)’이라 불린 일곱 선비가 있다. 1613년 인목대비를 폐위한 광해군에 반발하여 상소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정읍 칠보에 은거한 ‘김대립, 김응빈, 김감, 송치중, 송민고, 이상형, 이탁’ 일곱 명의 선비를 칭하는 말이다. 시대를 걱정하며 스스로 미치광이가 된 그들의 모습은 채용신(1850-1941)이 그린 「칠광도(七狂圖)」속의 주인공으로 남아있다.
그림 속의 장소는 옛 고을의 관청이 있던 마을을 뜻해 고현동이라고도 불린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와 시산리 일대이다. 최치원을 대표하는 역사성으로 정통성을 지니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그 맥을 지켜 전라도 서원의 수원 역할을 수행한 무성서원과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1401-1481)이 제창한 향약과 향음주례에 유래를 둔 ‘태인 고현동 향약’으로 500여 년이 넘도록 향촌 사회의 약속이 시행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칠광도」는 고종의 어진을 그린 어진화사로 유명한 채용신이 1910년 칠보면에 있는 김직술의 집에 머물며 칠광 중의 한 명인 송민고의 그림을 토대로 「송정십현도」와 함께 그린 그림이다. 「칠광도」는 비단 위에 채색한 가로 83.4cm, 세로 127.7cm의 크기로 고을의 경관이 그림지도처럼 상세히 표현되어 당대의 지형과 건물의 특징 그리고 칠광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지역의 귀한 자산도 담은 특별한 그림이다.
아름다운 산수화처럼 묘사된 산은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을 모신 산이라 하여 주민들이 성황산이라 부르는 산이다. 그 아래 지금의 무성리 무성서원과 주변 건물을 포함한 원촌마을 그리고 향약을 실시하고 문서를 보관하는 동각이 있는 남전마을과 시산 아래 지금의 시산리인 송산마을이 그려져 있다. 짐을 실은 나귀와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싸리나무로 보이는 나무로 얼기설기 담을 이룬 모습이 정겹다.
하지만, 마을을 지나는 물길은 1735년 대홍수를 비롯한 홍수와 섬진강댐을 만든 이후에 달라졌다. 서유구(1764-1845)가 『계원필경집』에 언급한 석귀와 유상대의 모습은 「칠광도」에도 찾아볼 수 있는데, 최치원이 성황산의 기를 보하기 위해 인공으로 만들었다 전해지는 흰 거북 바위와 자연 바위인 푸른 거북 바위 그리고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는 현재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최치원이 유상곡수(流觴曲水)하며 풍류를 즐긴 것으로 알려진 ‘유상대’의 모습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유상곡수는 물길을 만들어 술잔을 물에 띄워놓고 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읊던 것으로 곡수연이라고도 불렸던 선비들의 놀이였다. “유상대는 태인 고현내에 있는데 고운 최치원 선생이 창건하였다”란 묵재 정언충의 시구와 “시산 아래는 유상대가 있는데 대의 위쪽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대의 아래에는 굽이 도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라는 오백여 년 전에 쓰여진 정지유의 『유서석산기(무등산기)』에 기행문으로 남아있다.
그림에는 양 물길 사이 버드나무와 느티나무가 우거진 중심에 큰 바위를 빙 둘러 석축을 쌓은 것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신라의 포석정 등 정원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모습과 달리 작은 돌산과도 같은 바위 주위에 자연스레 냇물을 들인 것으로도 추정된다. 유상대는 훗날 태인 현감을 지낸 조상우와 그의 후손인 조항진이 복구했지만, 여러 차례의 홍수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에는 감운정이 세워져 있다.
이렇듯 한 고을을 다채롭게 표현한 아름다운 지도이자 풍경화인 「칠광도」인데, 의외로 그림의 제목이 된 주인공인 일곱 선비는 송정 아래 소나무 사이에 비밀스러운 듯이 작게 묘사되어있다. 세상을 등진 은둔자로 지조를 지키며 음풍영월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채용신의 의도가 돋보인다. 선비들이 담소를 나누고 사색하는 장소이자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의 절개에 비유하여 ‘송정’으로 이름 지어진 아담한 정자는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정 위에 자리한 영모당에는 「칠광도」와 칠광의 김응빈, 김감, 송치중, 송민고, 이탁를 포함한 김관, 김정, 김급, 김우직, 양몽우를 열명의 어진사람으로 표현해 그린 「송정십현도」의 모사본이 모셔져 있다. 아래쪽에 후송정은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지만, 지금은 물이 말라 있고 민가가 들어서 그림과 옛 사진에 담겨진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아쉽다. 어린 시절 이 근방을 놀이터 삼아 놀던 추억이 있는 향토연구가 오원근(1964년생)은 칠보면지와 「칠광도」를 접하고는 발굴하는 일에 몰두했다며 물길이 달라졌지만 “마을에서 백구라 불린 흰 거북바위는 원천마을 입구 쪽과 푸른 거북바위인 청구는 태산선비문화관과 한옥민박촌 인근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였다.
또한, 태산선비문화사료관 안성열(1961년생)관장은 무성서원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전해준 데에는 옛 모습을 보여준 「칠광도」의 역할이 컸다 하였다. 「칠광도」속에 담긴 면면과 무성서원의 모습이 지속 가능한 지역의 가치를 증명해준 셈으로, 이를 전승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칠광도」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지정 추진에 힘쓰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내장산의 단풍나무를 비롯한 정읍의 산천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향연을 보고, 「칠광도」의 흔적을 따라 옛고을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고요한 가운데 사물이 변화하는 것을 바라본다는 “정중관물화(靜中觀物化)”란 편액이 걸린 송정을 찾아 계절의 변화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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