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 환락의 도시에서 가족여행 천국으로
라스베이거스 새만금 개발 비전의 단골손님
복합리조트가 새만금 국제공항의 성패 가른다는 전문가 조언 되새겨야
전문=‘카지노 천국’, ‘도박의 왕국’으로 알려진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새만금 개발 모델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새만금에 라스베이거스를 벤치마킹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라스베이거스는 복합리조트 산업을 통해 완벽한 비즈니스 도시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주요 기업들은 신제품 출시 설명회를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서 갖는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공연도 매일 열린다. 과거 사막에 불과했던 라스베이거스가 지금의 발전을 이룬 배경은 현재 불모지나 다름없는 새만금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막에 올린 ‘밤이 없는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서부 네바다 주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도시이다. 1829년 스페인 탐험가에 의해 발견된 뒤 서부 개척 시대 스페인 상인들이 LA 가는 길에 쉬어가던 중간 기착지이자 오아시스였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의 이름 역시 스페인어로 ‘초원’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도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지난 1905년 내륙 철도 역사가 라스베이거스에 마련되면서다.
라스베이거스의 비약적인 발전은 1930년대 미국 경제 대공황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1931년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이 후버 댐 공사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카지노와 휴식 시설을 갖춘 도시의 모습을 형성했고, 대공황으로 일자리가 사라진 미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몰렸다. 1960년대에는 저급한(?) 오락 도시에서 첨단을 달리는 복합리조트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의 부는 막대한 카지노 수입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수익이 다각화하면서 도시의 분위기 역시 달라졌다.
도시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05년 라스베이거스 시정부와 카지노 오너들은 부정적 도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종합 레저타운과 비즈니스가 최적인 환경도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매년 1월초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라스베이거스의 변화와 마이스 산업 개념 정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행사 기간에는 전 세계에서 무려 20만 명이 찾아온다. 축구장 30개 정도의 면적에 4200여개 참가기업들이 그해에 선보일 간판 상품을 전시한다. 제조사와 바이어가 체결하는 판매 계약은 무려 10억 달러가 넘는다.
세계적인 아이돌인 방탄소년단(BTS)의 공연도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4월 열렸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전체에는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보라색 조명과 ‘보라해거스’(보라해+라스베이거스 합성어)란 문구가 전광판에 노출된 광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전세계 스타들이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하고, 이는 즉시 관광객 유치로 이어진다.
전북도는 물론 새만금개발청도 라스베이거스의 사례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양충모 전 새만금청장은 청장 재임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는 새만금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미래의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베드로 새만금이 손꼽힌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새만금은 과거 라스베이거스처럼 광활한 미개척지에 백지상태에서 건설되는 도시로, 기존도시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새만금과 라스베이거스
새만금에 라스베이거스식 복합리조트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청년정치인으로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김민석 국회의원은 지난 2007년 전북을 찾아 “새만금을 두바이, 라스베이거스를 뛰어넘는 ‘지식·문화 대특구’로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새만금에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인 IT와 문화, 영상, 게임, 컨벤션, 카지노, 관광, 레저 등을 결합시켜 세계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볼만하고, 가장 와볼 만한 지식 문화의 전당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헐리우드에 필적하는 세계영화스튜디오를 새만금에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공약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김완주 전북지사가 새만금에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카지노와 세계 유명 대학, 병원 등을 유치한다고 발표했다. 김 지사는 2008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세계적인 카지노 업체들이 새만금 투자를 하려한다”며 이를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명규 전북도 전 정무부지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그룹들이 아시아지역 투자를 위해 다양한 지역을 검토했고, 그 결과 한국의 새만금을 가장 적합지로 꼽았다"면서 "이들 카지노 그룹은 새만금을 동아시아 비즈니스, 관광허브로 만들겠다고 도에 투자를 물색해 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투자를 타진하고 있는 카지노 그룹은 2∼3개 정도로 알려졌고, 투자규모는 카지노 사업에만 8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돼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새만금과 복합리조트 사업 “라스베이거스의 단점을 버리고, 실리는 취하자”
“싱가포르가 카지노를 거부할 여력이 있는가? 나는 도박에 대해 선천적인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중국인의 도박 중독은 세계가 알아준다. 그래서 나는 도박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싱가포르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카지노는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업이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마리나베이샌즈를 유치하고, 인공섬 센토사를 만든 고(故) 리콴유(李光耀)전 총리의 말이다. 이러한 논리는 새만금에도 그대로 적용돼 아직도 많은 이들이 새만금을 살릴 수 있는 최후의 대책으로 복합리조트 사업을 꼽고 있다.
카지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진보 강세 지역인 전북에선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새만금에 라스베이거스식 발전 방식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지난 2016년 8월 재선 국회의원 시절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핵심 내용은 ‘오픈카지노’, 곧 내국인 출입 카지노 설치였다. 그의 법안 카지노 독점권을 갖고 있던 강원도와 전북도민 모두의 반발을 샀고, 전북지사가 된 현재는 추진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김 지사는 라스베이거스 큰손으로 불리는 샌즈그룹의 아델슨 회장을 직접 만나 특별법 통과시 새만금에 투자하겠다는 구두 약속도 받아냈다.
정확히 김 지사의 국회의원 당시 전략은 라스베이거스보다 이를 벤치마킹한 싱가포르식에 가까웠다. 내국인 카지노를 하되 강력한 도박방지법을 바탕으로 사실상 내국인의 도박중독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507호실 김관영 의원실에는 강원도 폐광지역 단체 관계자들이 김 지사를 만나 거세게 항의했다.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새만금에 제2의 내국인 카지노가 생기면 강원랜드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지고, 이는 곧 강원도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한다는 주장이었다.
김 지사는 예나 지금이나 카지노는 본질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도민들의 공감대 형성없이는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거나 고집하지 않겠다는 게 지금의 입장이다. 다만 새만금에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 복합리조트 산업이고, 이를통해 전북이 마이스 산업의 메카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국회의원 재임 기간 중 “카지노에 관심을 쏠리는 현실이 아쉽다”면서 “새만금에 복합리조트가 들어서면 향후 5년간 23조5000억 원의 경제생산이 유발되고, 부가가치만 8조9000억 원이다. 또 일자리가 23만 개가 생길 수 있다 . 복합리조트에서 상시 고용되는 사람만 3만5000명”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김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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