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정년만 연장 땐 기업 부담 커
"정년 연장 수혜 1명 늘면 청년 고용은 0.2명 감소"
'정년 연장' 이슈 트리거는 '저출산과 고령화'다. 국민연금 고갈, 노동력 부족과 노인부양 부담 가중, 노인 빈곤 등 문제의 본질적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인구구조 변화'다.
원인을 무효화하려면 출산율을 끌어 올려야 할 텐데,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이라고 공감하는 젊은 세대는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44.7%가 '출산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이렇다 보니 고령층을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게 하는 고용정책이 발등의 불이 됐다. 양질의 노인 일자리 발굴 등 관련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고, 정년 연장은 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게다가 지난 2016년부터 시행된 '60세 정년 연장'의 부작용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기업 인건비 부담 증가, 청년취업 악화 등⋯. 정년을 더 연장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간 거론됐던 정년 연장의 걸림돌을 들춰봤다.
△"정년 5년 연장하면, 한 해 추가비용 16조"
정년만 더 늘리게 되면 기업이 짊어져야할 비용 부담이 커진다. 한국경제원구원은 지난 2020년 보고서 '정년 연장의 비용 추정과 시사점'을 통해 60∼64세 추가 고용 시, 도입 5년차부터 한 해 직접비용 14조 3875만 원, 간접비용 1조 4750만 원 등 15조 8626만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 확산 도입으로 임금감소율이 연 5%가 되면, 연간 2조 7172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의 추가 비용 발생은 근로자 근속연수가 늘면서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때문인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도 비용 부담은 여전히 높은 셈이다. 결국 기업이 과도한 비용 부담으로 시장 경쟁력을 잃게되면 경영 위기에 맞닥뜨리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년 연장이 마냥 달갑지 않은 기업 입장에서는 계속고용 방식으로 '재고용'을 선호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021년 전국 5인 이상 102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고령자 고용정책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58.2%가 '현 시점에서 60세를 초과한 정년 연장은 부담'이라고 응답했다.
정년 연장 시 가장 부담되는 것은 '연공급제로 인한 인건비'라는 응답이 50.3%로 가장 높았다. 이어 '현 직무에서 고령 인력의 생산성 저하' 21.2%, '조직내 인사적체' 14.6% 순으로 집계됐다. 그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는 '임금피크제 도입·확대' 34.5%, '임금체계 개편' 20.8%, '고령인력 배치 전환' 14.3%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2023 고령자 계속고용정책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30인 이상 1047개사 중 67.9%가 '재고용' 방식으로 고령 근로자를 고용한다고 답변했다. '정년 연장'은 26.3%, '정년 폐지'는 12.8%에 그쳤다.
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는 "대한상공회의소가 2021년 발표한 중장년 인력관리에 대한 기업실태 조사에 따르면 300개사 국내 대·중소기업 89.3%가 정년 60세 의무화로 인해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노동자와 사용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책이 도출되기에는 중장기적인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청년 일자리 감소 우려⋯세대간 갈등 소지도
청년기본법 제3조에 따르면 '청년'이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다만,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에서 청년은 15세 이상 29세 이하,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상 청년은 19세 이상 39세 이하 등 다른 법령과 조례에서 청년에 대한 연령을 다르게 적용하기도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청년기본조례의 경우 '청년'은 18세 이상 39세 이하, 지난해 개정된 '완주 청년 기본조례'에서는 청년 연령을 기존 18~39세에서 18~45세로 상향 조정했다.
청년고용률 지표는 15세 이상 29세 이하를 기준으로 한다. 올 1월 현재 우리나라 청년고용률은 46.3%, 전북은 39.4%에 그쳤다. 연도별 청년고용률은 상승세이지만, 정년을 더 연장하면 청년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분석 결과, 2016년부터 시행된 60세 정년 의무화로 인해 기업에서 55~60세 고령층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15~29세 청년 일자리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게 될 근로자가 1명 많을 경우 고령층 고용은 0.6명 증가하고 청년층 고용은 0.2명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정년 연장이 세대 갈등으로 번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정적 일자리, 청년 입장에서는 '뺏긴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는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에 대해 "'고령층이 빠져나가지 않으면 채용시장에 신규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청년과 중장년의 인식 차이 문제가 크다"며 "학사모를 벗자마자 이론적인 전문성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경우와 오랜 시간 쌓인 숙련도를 통해 전문성이 높은 중장년의 경우를 비교해 봤을 때 과연, 어느 쪽이 일자리의 실패성이 낮을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각 연령과 숙련도의 차이에 상응하는 임금체계와 근무 강도를 개편해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며, '무조건적인 고연봉'이라는 인식 또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 및 업무효율 감소와 함께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 퇴화에 따른 노동력의 질 저하와 사고위험 노출도 정년 연장의 문제점으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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