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 종이, 한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대대로 이어져 온 장인의 손길로 닥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드는 한지는,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내구성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지 문화의 중심지인 전주를 비롯한 전북 곳곳에서 전통을 잇는 장인들의 숨결과,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예술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지난 천년처럼 앞으로의 천년도 이어질 수 있는 한지를"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보유자로 지정된 최성일 한지장은 19살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지와 동행해 왔다. 반세기 가까이 한지와 함께한 그는 전통의 맥을 잇고자 끊임없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전주 전통한지'의 계승자인 최 한지장은 일본의 화지, 중국의 선지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품질과 기품을 지닌 전통 한지를 연구하며 선조들의 손길이 담긴 전통 제작 기법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고 있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한지의 미래"
완주군 대승한지마을 인근 고즈넉한 공방에서는 한지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현대한지조형작가 차종순은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꼬아 만든 한지 끈으로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우리 고유의 전통 소재인 한지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예술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12차례의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차 작가는 "이제는 한지가 세계 무대로 나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한지의 미래 "전통한지가 창조적 진화를 해야 한다."
"할아버지 세대의 쌈지 주머니를 기억하시나요? 담배와 부시, 돈을 넣고 다니던 그 작은 주머니 말입니다." 얼핏 가죽으로만 보이던 그 주머니의 상당수가 사실은 '한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여러 겹의 한지를 물에 적신 뒤 수 시간 동안 손바닥으로 치고 비비는 과정을 거치면, 마치 가죽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질감의 섬유로 변신한다. 이렇게 탄생한 '줌치 한지'는 놀라운 내구성으로 예로부터 의복과 주머니 등 생활용품의 소재로 널리 활용됐다. 1983년 전주와의 첫 만남에서 한지의 매력에 매료된 유봉희 작가는 40여 년간 한지 연구에 몰두해 왔다.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접목해 현대적 감각의 줌치 조형을 창조하는 것이 그의 예술적 도전이다.
"한지의 K-산업화"
전통과 현대 기술의 만남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박금숙 작가. 그가 독자 개발한 3D 프린팅 기법은 기존 수작업 대비 제작 시간을 80%나 단축시켰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으며 전시회를 열고 있는 그는, 닥종이인형을 통해 한국 전통 공예의 진수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박금숙닥종이인형연구소에서 그의 예술적 실험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닥종이인형의 세계화를 위해 더욱 다채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다.
"직접 체험해 보니 만드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영국에서 온 시드(Sid) 씨는 한지를 만드는 내내 눈빛이 빛났다. 닥나무 껍질을 두드리고, 벗기고, 한지를 뜨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고 한다.
전주천년한지관은 전통한지 계승과 보전, 문화 확산을 위한 거점공간으로서 국내 최대 한지 제조시설을 보유한 한지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에서는 전통 한지 체험을 할 수 있으며 2층에서는 전통한지의 다양한 쓰임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전시기획 등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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