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노랑도 동색(同色)인가
손해일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장 3월 꽃샘추위에도 양재천과 우리 마을 근린공원엔 꽃 잔치가 한창이다. 대부분의 수목이 막 겨울잠 깨어 겨우 잎새나 추스를 때지만,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나와 봄을 재촉한다. 먼저 핀 매화에 뒤이어 노란 산수유가 만개했고, 앞서가니 뒤서거니 홍매와 목련도 이웃해 피었다. 모두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온 별종들이다.
그중 산수유는 지난해의 빨간 열매들을 훈장처럼 매단 채로 올해 노랑꽃들이 활짝 벙글었다. 산수유는 영원불변영원불멸이라는 꽃말과 함께 노오란 꽃잎과 열정의 빨간 열매가 초봄의 전령사로는 으뜸이다.
산수유 꽃말은 영원불멸/눈 깜짝 수유 간에 남가일몽/ 잔망스러운 가지의 노란 유등들// 천국을 본다/ 가을이면 빨간 불꽃 열매 등신불로 남을/ 삼천대천세계 극락을 본다. 이것은 졸시 < 산수유 수유간에> 의 일부이다
산수유 주산지는 구례 산동, 이천 백사면, 경북 의성군이라지만 지리산자락 구례 산동이 더 유명하다.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구례군 산동면 상위, 하위, 반곡, 계척, 현천, 대평 산수유 마을과 당곡계곡엔 초봄이 기지개켜는 별천지를 이룬다. 하늘도 훨훨 날고 봄조차 노릇노릇 익는다. 지리산 골짝골짝 살얼음 밑으로 풀리는 돌개울 물소리는 천연 생음악이다. 청보리들이 영원을 손짓하고, 산수유 마을은 별똥별 살별 우수수 쏟아진다. 호오이~ 호오이~ 부르는 소리에 박새 딱새 직박구리 노란턱 멧새도 살갑게 날아든다.
산수유 꽃 한 봉오리엔 작은 화판이 20여 개가 둥글게 달렸는데, 이것은 마치 어린 딸아이 노란 화관 족두리의 떨잠처럼 실바람에 파르르 떨린다.
그 산수유 화판 속에 숨죽인 털실 암술 수술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산수유와 생강나무, 개나리, 유채꽃, 노랑턱멧새, 노랑나비 등이 나붓나붓 어우러진 노랑 천지에 지그시 눈감으면, 어느새 유녕의 고향이 눈앞에 있다. 꽃샘바람에 사레들린 시간의 미늘처럼 산수유 수유간에 이승이 진다.
고향 춘향골 남원을 떠난 지도 50년이 넘었다. 이젠 서울에서의 뿌리 뽑힌 타향살이가 더 익숙해 졌지만 그래도 늘 꿈결엔 고향산천이 어른거린다.
서울 강남 이곳저곳을 거쳐 20년째 터를 잡은 양재동 우리 동네 인근 청계산, 구룡산, 양재천, 시민의숲엔 지금 노란 산수유 꽃판이 천지빽가리다.
옛말에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지만, 산수유 노랑도 다 동색일까. 산수유, 개나리,유채, 생강나무 등 노랑 족속들이 이웃해 피었지만 유독 산수유는 노란 꽃판 사이사이 지난해의 빨간 열매를 숨기고 있다. 남과 북,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6자가 모두 노란빛 평화의 기치를 내걸지만, 속내는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산수유가 노랑꽃 사이사이 새빨간 열매를 감추고 있듯이 북한은 노란 위장 평화 꽃사이로 붉은 이념 공산주의를 감추고 있다.
3대 세습 별종 왕국의 위장 평화공세 뒤엔 몇십년 어깃장 내며 몰래 개발한 핵무기가 전 세계의 무법자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잘 될 것처럼 보이던 미국과의 북한 비핵화 협상 줄다리기가 북한의 꼼수 들통으로 결렬되자 각국 이해관계와 셈법도 아주 복잡해졌다. 더욱 궁지애 몰린 건 북한이다. 유엔과 주변국의 대북제재는 더욱 강경해지고 북한주민의 질곡은 심해질 뿐이다. 북한의 강경 오판 도발과 미국의 북폭이라는 촤악의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배고프고 실속 없는 핵무기 몽니를 부릴 게 아니라 과감한 비핵화 결단으로 행복과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한다.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장평화나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울에 속아 북한의 핵 노예가 되거나 자유 대한민국을 망쳐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