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시 읽는 시간' 시는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가장 진실한 언어이며 기도이자 노래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내면의 불안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각자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시를 읽는 것과 같다.
고단한 직장생활을 그만둘 것이냐, 아니면 버티며 약을 먹을 것이냐의 선택 앞에 놓였던 30대 여성, 선택을 생각할 틈도 없이 기계처럼 일했지만 해고자 신세가 된 노동자, 20년 넘게 안정된 직장을 나름 잘 적응하며 다니고 있음에도 뭔지 모를 죄의식에 시달리며 공황 장애를 앓은 50대 남자, 불안한 현실보다는 게임 속 세상에서 안정을 찾는 남자, 자신이 겪은 혐오와 차별을 모든 약자의 고통과 동일시하는 여성
이들은 각자 다른 처지이지만 같은 세계의 불확실과 비참한 현실 앞에 선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시 읽는 시간> 작품 의도
자본의 시간은 끊임없이 인간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세계의 비참 속에서 자신의 고통은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감히 입 밖으로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말문을 열고, 이 세상에 자신이 설 자리는 주어지지 않거나, 박탈된 지 오래되어서 이제 많은 것들에 무감각해진 사람의 잃어버리고 있던 감각을 되살리고 싶었다. 무의미한 삶, 허무와 절망뿐인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함께 느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의 힘을 빌리기로 작정했다. 시는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가장 진실한 언어이며 기도이자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 읽는 시간> 이수정 감독은?
1980년대 후반부터 독립영화를 시작했다. 방송 다큐 연출, 극영화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독립 다큐멘터리 연출을 주로 하고 있다. 2016 <시 읽는 시간> 연출/제작/촬영 2015 <나쁜 나라> 공동연출/촬영 2012 <깔깔깔 희망버스> 연출/제작/촬영
<시 읽는 시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글: 이승민 영화평론가)
영화는 감독-나가 만난 다섯 명의 자유로운 인물을 담는다. 물론 여기서 자유는 낭만적 자유가 아니라 일방향으로 몰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제동을 걸고 그 옥죄임의 사슬을 풀고자 하는 절규에 가까운 자유이다. 직업이 꿈이 아니고, 경제적 부유함이 목표가 아닌, 나답게를 찾아가는 삶. 사실 현대인의 맘 한편에서 누구나 꿈꾸는 삶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꿈만 꾸는 삶이기도 하다. 영화는 옥죄임의 버거움과 자유를 자기 삶에 녹여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 시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해야만 할 일로 촘촘히 나뉜 목적 지향적 시간이 아닌 무정형의 덩어리 시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명확한 주제의식을 향해 전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간결한 영상미와 더불어 열린 구조로 펼쳐진다. 그러므로 인해 관객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사는 게 맞느냐고. 그래서일까? 영화는 애써 나를 지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를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텍스트로, 화면 밖 목소리로 드러난 나는 영화 속 관계망의 주축이자 시 읽는 시간의 주인공이다. 나를 놓치지 않는, 나를 찾아가는, 나답게를 성찰하는 영화답다.
<시 읽는 시간> 제9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리뷰 (글: 은유 작가)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최승자 시인의 시구로 이 영화를 표현하고 싶다<시 읽는 시간>에는 출판사를 그만둔 30대 여성, 해고자 신세가 된 노동자, 공황 장애를 앓은 50대 남자, 수입이 불안정한 일러스트레이터, 차별받는 여성으로서 고통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여성이 출연한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받았던 상처와 비참, 불안과 초조를 가만가만 이야기한다.
직원의 위치는 바둑돌과 같아서 두는 대로 간다고 말하는 남자, 저는 제가 아름답거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아픔을 완벽하진 않지만 알려고 노력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여자의 그런 말들은, 그대로 시다. 찬찬히 지나온 삶을 복구하는 자기서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가슴을 두드리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가난과 해고와 실직과 배제에 떠밀려온 다섯 명이 이 세상의 속도에 떠밀리거나 경쟁에 질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길든 타자가 아닌 자유로운 주체로 삶의 영위하려는 방편으로서 시집을 꺼내어 시를 낭독한다. 자본의 굉음에 묻혀 집중하기 어려웠던 사람의 목소리가 감미롭고 그 육성에서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기에 이르니, 시를 읽는 시간은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이 된다.
방영작품 정보
- 감독/각본/구성/기획/제작/배급 : 이수정 - 출연 : 오하나, 김수덕, 안태형, 임재춘, 하마무 - 촬영 : 왕민철, 이수정 - 음악 : 목소 - 사운드 디자인 : 고은하 - 편집 : 고동선 - 장르키워드 : 다큐멘터리 - 제작 : 생의 한가운데 - 홈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mittedeslebens - 낭독된 시와 글 : 임경섭 새들은 지하를 날지 않는다 죄책감 심보선 오늘 나는 김남주 자유 이정하 지금 하마무 살아있는 쓰레기 임재춘 최문선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시 읽는 시간> 영화제 상영 및 수상내역 제1회 FEMALE FILMMAKERS FESTIVAL BERLIN 공식초청 (2019, 독일) 제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개막작 (2018) 제12회 모나코국제영화제 공식초청 (2017) 제8회 부산평화영화제 공식초청 (2017) 제5회 무주산골영화제 창 (2017)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다큐초이스 (2017) 제17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신작전 (2017) 제2회 FICII - INCA IMPERIAL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공식초청 (2017, 페루) 제60회 라이프치히다큐멘터리 & 애니메이션영화제 공식초청 (2017, 독일)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2016)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_장편 (2016) 제5회 다후크국제영화제 Focus Country Korea Section (2017, 이라크) 제10회 THIS HUMAN WORLD - INTERNATIONAL HUMAN RIGHTS FILM FESTIVAL Official Selection (2017, 오스트리아) 제3회 바이아독립영화제 공식초청 (2017, 브라질) 제15회 월드필름페스티벌 공식초청 (2018, 에스토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