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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전반기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군에 올랐던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경기 양주·5선)은 "전북은 사실상 자신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라면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 의원은 오래전부터 아버지 고향인 익산에 연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언론을 통해 직접 인연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익산 함열이 저의 원적지이자 호적상 출생지이며, 외가도 익산 황등에 있다”며 전북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익산에는 제 본가와 외가 친인척들이 아직도 많이 살고 계신다”며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익산 함열 종중(진주 정씨) 묘역에 모셨다. 그만큼 전북은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라고 말했다. 가족과 일가 친척은 물론 부모님의 선산까지 있는 익산이 ‘자신의 뿌리’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익산에서의 추억도 아주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정 의원은 “어릴때 익산의 본가와 외가를 자주 방문했다”며 “서울 용산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찾아간 황등역의 모습과 가을에 익산 본가에서 뛰어놀던 추억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강원도와 경기 북부 지역에서 자주 이사를 다녔다. 정 의원의 아버지는 6∙25전쟁 발발 직후 군에 입대했고, 많은 전공을 세워 병사 출신으로 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에 부사관으로 장기복무하며 강원도와 경기북부 지역에서 직업군인 생활을 이어갔다. 정 의원은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서 10여 차례 정도 이사를 했다. 강원도와 경기 북부를 두루두루 잘 아는 그는 경기도 양주시 최초의 5선 의원이다. 군사접경지인 경기북부 지역이 보수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봤을 때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5선을 달성한 것은 진기록으로 꼽힌다. 익산에 원적을 두고 있는 정 의원은 현재 전북이 놓인 현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국회와 당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중진 의원으로서 쇠퇴하는 전북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정 의원은 국회 예결위원장 시절 전북 예산 확보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전북이 올해 전북특별자치도가 되었지만 지난 10년 사이 전북 인구가 약 12만 명이나 감소하며 여전히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라면서 냉철한 현실을 상기시켜줬다. 그는 “전북에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려면 기업유치로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며 “전북이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유치했는데 여기에 예산과 제도적 지원을 집중해 전북의 미래 신성장산업으로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문화, 교통, 복지 인프라 확충으로 주민들의 정주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우여곡절 끝에 후보 등록일에 서울 강북을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고 본선에서 승리해 당선된 익산 출신 한민수 당선인은 “전북의 아들’이자 ‘강북을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당선인은 2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민주당 대변인으로서 인지도를 쌓았다. 정제되면서도 논리적인 논평으로 호평받은 그는 간결하고 강한 어조에도 단 한번도 자신의 발언과 관련한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면서 체급을 키워나갔다. 한 당선인은 익산에서 태어나 이리북초등학교, 원광중학교, 남성고등학교까지 모든 학창시절을 고향에서 보냈다. 이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4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2017년 퇴사할 때까지 한 회사에 몸담았다. 기자 재직 시절엔 정치부장, 산업부장, 외교·안보국제부장, 문화체육부장 등 주요 데스크를 거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95년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과정에서 헬기 난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내 보도한 것도 바로 그였다. 또 2001년에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심층취재로 자유언론상과 통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보도들은 한 당선인이 기자로 일하며 인권문제에 깊은 고민을 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학창시절에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반장과 회장을 도맡으며 리더십을 키워왔다. 한 당선인은 “어렸을 때부터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성격에 친구들 앞에 나서길 좋아했었다”며 “학교 간 대항경기가 있을 때마다 늘 응원전의 전면에는 제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으면서 겪은 아픔도 이야기 했다. 한 당선인은 “그때 일기에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긍정의 글을 많이 썼는데 그 글들이 오랫동안 제게 큰 힘이 돼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창시절 많은 고향 분들께 감사한 도움과 격려를 받은 기억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22대 국회에서는 언론인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 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당선인은 “아시아 1위 언론자유지수를 기록했던 우리나라가 올해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62위로 추락했다”며 “진실한 보도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22대 국회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의 권리를 회복시켜 대한민국을 정상국가로 되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전북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평가하며 도민끼리 사분오열되어선 안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북은 광복 당시보다 인구가 줄어든 유일한 지역”이라면서 “전북의 도시들은 일부 지역을 빼면 20년 전과 모습이 똑같다. 복합적 문제에 직면한 전북을 살리려면 적극적인 행정과 도민 단합이 우선이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전북 6개 시 8개 군에 살고 계신 분들 모두가 전북인이라는 하나 된 정체성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거듭 호소하며 “저 역시 국회에서 고향발전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북 완주 출신으로 인천에서 당선된 이용우 당선인(인천 서구을)이 "노동시장의 부조리와 전북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이 당선인은 전북 지역구 22대 국회의원 당선인과 연고 당선인을 통틀어 50세라는 가장 젊은 나이에 국회에 등원하게 됐다. 특히 인천 서구지역 최초 호남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그는 40년 만에 탄생한 완주출신 국회의원으로 고향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완주출신 국회의원은 1988년 구이면 출신 임방현 전 국회의원이 마지막이었다. 전북일보가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 당선인은 가족과 친지들이 완주에 있는 만큼 전북을 떠난 느낌이 크게 없다고 했다. 특히 고향과의 소통에 대해 반가움도 숨기지 않았다. 이 당선인은 “지금도 고향 완주를 자주 찾아 가족들과 왕래하고 있다”면서 “아무리 고향이라도 터전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멀어질 수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연결고리가 강하게 남아있어 전북이 남 같지 않다”고 말했다.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이곳에서 보낸 그는 어린 시절엔 집에서 가까운 용진초·중학교를 다니면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전주 완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 진학한 그는 2002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노동문제에 깊이 파고들었다. 다른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생들처럼 명문 학교 수학교사나 스타강사 대신 자동차 생산공장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업해 노동 현장에서 5년 이상 생활하며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직접 경험했다. 이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2013년 변호사시험(2회)에 합격하면서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노동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실제로 그는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이 당선인이 민주당 총선 영입인재 23호로 정치권에 입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지금의 전북의 현실과 발전 방안에 대해서는 과거의 강점을 현재 지역발전 코드에 맞게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과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주나 전북을 교육도시라고 했다”며 “교육기능을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정주 여건이 형성되고 여기에 기업유치를 적극적으로 해 사람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역시 고향 전북 발전에 국회의원으로서 미력하나마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 역할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희망하는 상임위는 환경노동위원회로 자신의 경험과 특기를 살려 노동시장의 부조리와 사회적·경제적 차별을 줄이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 20년간 노동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활동해왔고,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환경과 노동이기도 하다”면서 “우리가 미래 기후위기와 노동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14번으로 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고창 출신 정을호 당선인은 “고향 전북은 저의 시작점이자 삶 그 자체”라며 지역발전에 힘을 보탤 것을 약속했다. 정 당선인은 참여연대 운영위원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으로 18년간의 당직자 생활로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며 특히 선후배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일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만난 정 당선인은 자신과 고향의 인연을 강조하며, 앞으로 의정활동 중심에 전북을 두겠다고 했다. 고창군 성내면 출신으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정 당선인은 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했다. 고창 성내면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인근 정읍 호남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농축산업에 종사했던 어머니는 정 당선인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고,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졸업한 뒤 민주당 중앙당에서 활약하기 까지 어머니의 가르침은 삶의 원동력이 됐다. 고창에는 부모님의 선산과 살았던 집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정 당선인은 “저는 사실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친지와 지인 절반 이상도 여전히 전북에서 살고 있다”면서 “제가 비례 14번으로 국회에 들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도 전북인들의 지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입성하기 전에는 중앙당 당직자로서 요직을 두루 맡았다. 두 번의 총선 승리에도 그의 노력이 숨어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바로 직전 민주당 총무조정국장으로 당 살림살이와 조직을 도맡았었다. 또 전략기획국장과 당 대표비서실 국장을 거치는 등 항상 당의 핵심에 정 당선인이 자리했다. 정 당선인은 “항상 성실, 진실, 절실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면서 “전북에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원내부대표를 맡게 된 그는 자신의 할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북발전 TF를 가동해 도내 자치단체와 정치권 간에 핫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 당선인은 “제가 원내부대표에 임명된 것도 사실상 전북 몫으로 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박찬대 원내대표 역시 이 부분을 저에게 역설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개원하는 즉시 전북발전 TF를 구성해 전북 자치단체장들을 예산철에만 만나는 게 아니라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전북의 발전 방안에 대해서는 교육 기능을 강화해 인구가 유입되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북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 등을 살려 브랜드로 만드는 전략도 고민했다. 배정을 희망하는 상임위로는 정무위원회를 꼽았다. 정무위 활동을 통해 대학생들 학자금 무이자 정책 및 입법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다.
더불어민주당 오세희 당선인(비례대표)은 자신의 고향인 부안에 대해 “농촌 마을에서 자라 풍족하진 않았지만 3남 1녀의 막내딸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꿈을 키워온 곳”이라면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오 당선인은 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중 거의 유일한 자수성가형 사업가 출신 정치인으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계를 대표해 민주당 비례대표 7번으로 당선됐다. 오 당선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학창시절을 부안에서 보냈다. 부안여중과 부안여고를 졸업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미적 감각을 자랑했다. 아름다움, 즉 미(美) 대한 관심은 곧 진로선택으로 이어졌고 치열한 전문성을 쌓는데 바탕이 됐다. 1955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현대사회에서의 '아름다움'은 '자기표현의 수단'이며 '경쟁력'이 될 것을 직감했다고 했다. 그가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 출신임을 고려하면 자신만의 개성있는 철학이 뚜렷했던 셈이다. 소상공인을 대표해 국회에 입성한 오 당선인의 성공 배경은 전문성과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는 데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메이크업은 일부 여성 스타가 아니면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특히 국내에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어 해외 유학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오 당선인은 “학원을 설립할 나부터가 가장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파리의 '아뜰리에 메이크업 전문학교(Atelier International Maquillage Paris)'에서 뷰티-메이크업 과정을 이수했다”면서 “그러나 그것으론 부족했다. 예술적 성향의 유럽식 메이크업에 대중성이 강한 메이크업을 접목하기 위해 캐나다의 '프로페셔널 메이크업 스쿨(Canada Professional Make-Up School)에서 더 많은 기술과 지식을 습득했다”고 했다. 그 결과물은 오 당선인이 1989년 설립한 수빈아카데미가 됐다. 수빈아카데미는 오 당선인이 관련 사업을 정리할 때까지 대한민국 뷰티 업계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대학들의 미용이나 메이크업 관련 과정도 그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한국메이크업협회장과 소상공인협회장을 역임하면서는 제도개선에 앞장섰다. 그 결과 메이크업만 정말 하고 싶은 경우에도 메이크업과 무관한 헤어미용 기술을 습득하고 헤어미용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시켰다. 실제로 2015년부터는 메이크업 업종과 미용업이 분리돼 각각의 영역이 분명해졌다. 이제 국회에서는 소상공인 몫으로 비례대표 당선인이 된 만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입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나가겠다고 했다. 오 당선인은 “가뜩이나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이 낸 혈세를 허투루 쓰면 안 된다”며 “소상공인을 성장형, 기업가형, 생계형으로 구분해 각각의 상황에 맞는 지원과 대책을 만들어내는 게 내 역할이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고향 전북 발전에 대해서는 새만금이 이제는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고 했다. 오 당선인은 “형제들이 전주와 부안에서 살고 있고, 부모님 선산도 전북에 있다”며 “전북에 갈 때마다 해양자원, 특히 새만금을 잘 활용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해 안타까운 심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만금 개발 속도가 늦어질수록 부작용만 속출할 수 있다”며 “관련 현안에 제 힘이 필요하다면 꼭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초선 시절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던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서울 강서을)은 “전주는 진성준의 뿌리이자 지금의 제가 있게 한 근원”이라며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실제로 진 의원은 전주 풍남초등학교, 전주 신흥중학교, 전주 동암고등학교, 전북대학교 법대까지 전주에서 모든 성장 과정을 거쳤다. 웬만한 지역구 의원들보다 더 깊은 연고를 갖고 있는 셈이다. 진 의원 역시 “어머니께서도 전주에 (거주하고)계신다”며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전주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북과 전주는 ‘진성준 정치의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전북 도민들이 우리나라 정치사에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보여준 선택이 지금의 민주당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진 의원은 “나라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반드시 우리 도민분들이 앞장서 일어나 주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저에게 전북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고향에서의 기억에 대해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군사정부에 체포됐던 아픈 추억을 떠올렸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민주화에 투신한 진 의원은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하는 등 전북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9년 3월 6일 육군에 입대한 이후에는 군대 내 인권문제와 관련해 동료들과 해결 방안을 논의하다 불순 조직으로 몰려 보안사에 체포되면서 육군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청년기 내내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상당한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진 의원은 “저 때문에 (전주)집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이후 어머니 앞에서 보안사에 체포돼 끌려나간 적이 있다”며 “당시 어머니가 (끌려나가던)제 손을 놓지 못하시던 모습이 제 가슴 속에 평생 박혀 있다”고 회상했다. 전북 발전전략과 관련해선 다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진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구는 마곡지구 등을 중심으로 그의 임기 동안 빠르게 발전했다. 진교훈 강서구청장의 당선에도 진 의원의 지역구 활동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 의원은 “외부에서 볼 때 전북 현안은 새만금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물론 새만금을 잘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전북이)새만금에만 매달리기만 해서도 안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전북은 이제까지 새만금을 지역 발전의 가장 큰 성장동력으로 삼았다”며 “새만금에 기대는 거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는 또 다른 비전이나 전략을 좀 더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2대 국회 의정활동 목표에 대해선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본질적으로 개선하는데 총력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단순하게 한 두 가지 현안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차별’을 극복해야 저출생과 소멸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 정치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당선으로 3선 중진 반열에 오른 진 의원은 19대 때 비례대표로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정무기획비서관과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20대를 제외하면 21대 총선과 22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고, 22대 국회 첫 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 임명됐다.
국회 제3당에 올라선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초선인 강경숙 당선인이 전북을 대변하는 의정활동을 약속했다. 조국혁신당은 전북에서 45.53%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강 당선인은 조국 대표가 당선 후 첫 지역 방문지로 전북을 선택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강 당선인은 특히 전북을 연고로 한 초선 당선인 중 전북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일 전북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강 당선인은 “전북도민들이 4·10 총선에서 압도적인 투표율로 조국혁신당을 지지해주셨다”면서 “비례 11번인 제가 도민분들의 애정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당선인은 이어 “이 정부 들어 지역균형 발전이 무너지고, 전북의 자존심이 크게 훼손되는 현실에 전북인의 한 사람으로 크게 분노해 왔다”면서 “다음 달 국회에 등원하게 되면 전공 분야인 교육, 복지 분야에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전북을 대변하는 의원으로 전북의 여러 의원과 발을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조국 대표 역시 전북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며 “전북특별법 보완에 대해 우리당이 집중할 생각이다. 특히 재정특례 보장이 안 되고 있는데 이 문제를 김관영 전북자치도지사와 함께 협의해 해결해 나갈 방침”이라고 귀띔했다. 강 당선인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남원의 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또 원광대에서 2007년도부터 근무해 지역사정과 현안에도 매우 밝았다. 강 당선인은 지난달 23일 고향 남원에 고향사랑기부금을 기탁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강 당선인은 “저의 뿌리인 남원을 잊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더욱 자랑스러운 남원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채수근 상병의 사망사건과 관련한 특검법 처리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채 상병은 공교롭게도 강 당선인과 같은 남원 태생에 원광대를 다니는 재학생이었다. 채 상병은 원광대 교수였던 강 당선인의 같은 고향 후배이자 원광대 제자인 셈이다. 강 당선인은 “조국혁신당은 ‘채 해병 순직 수사 외압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등 6개 야당, 해병대 예비역 연대와 함께 다음달 2일 ‘채 해병 특검법’ 통과를 결의했다”며 “국민의힘은 ‘채 해병 특검법’ 국회 통과에 협조해야 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채 해병 특검법’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상임위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국회 교육위원회를 희망했다. 21대 국회에서 교육위는 전북정치권에 불모지였던 만큼 강 당선인의 활약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한편 강 당선인은 남원시 금동 출생으로 남원초등학교에 다니다 서울로 전학을 가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후 이화여대 사범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으며, 대학 재학 중 봉천동 달동네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열거나 빈민 현장활동을 통해 불우이웃을 도운 일화는 유명하다. 졸업 후엔 서울 소재 공립학교 특수교사로 근무하다 교육부 교육전문직 공채 3기에 합격해 2000년 3월부터 국립특수교육원 교육연구사로 재직했다. 이후 2007년 원광대학교가 중등특수교육과를 개설하면서 교수로 임용됐다.
고창 출신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북의 선출직 공직자(국회의원·자치단체장)들이 작은 이익에 몰두해 힘을 하나로 합치지 못한다면 결국 공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 의원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서울 동대문갑에서만 4선을 달성한 ‘정치의 달인’으로 꼽힌다. 내로라하는 인물도 서울에선 부침이 있기 마련인데 안 의원은 5선 연임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하면서 정치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지난 29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만난 안 의원은 고향을 떠난 세월이 오래됐음에도 고창군의 모든 읍·면·리의 사정을 속속 꿸 정도로 지역 사정에 밝았다. 지역구인 서울 동대문구의 동 하나하나의 현안을 꼼꼼히 챙기기로 유명한 그는 고향인 고창의 작은 마을의 역사나 인물에 대해서도 정통했다. 다른 전북 연고 의원들의 경우 고향에 대한 추억이나 에피소드를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안 의원은 고창에 있는 마을의 족보를 외우는 수준이었다. 그는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정치인 외면하는 정치인이 오래가는 일은 별로 없다”고 단언하며 “전북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안 의원은 이제 5선이 된 만큼 목적지가 ‘탁월한 시설’을 강조했다. 남들과는 다른 안목을 통해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안 의원은 “지역이나 국가나 서로 간에 여야가 양보해서 합의하는 협치가 정말 중요하다”면서 “당장 눈앞의 일만 바라보고 가면 비극이 되풀이될 뿐”이라고 경고했다.고향 전북에 대해선 도전 정신과 유연한 사고를 당부했다. 안 의원은“전북에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전북 사람이 좋게 말하면 순수하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말하면 도전 정신이 약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도전정신이 약하다는 것은 곧 절박함과 간절함이 부족한 것으로 연결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전북 스스로 어떤 한계점을 항상 가지고 있다. 발전에 제한을 두는 것인데 도전과 응전이 있어야 지역이 더 뻗아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이라고 해석했다”며 “도전에 적절히 응전한 집단과 나라는 성공을 하고 도전에 적절히 응전을 못한 국가와 조직과 집단에 대해서는 역사의 퇴행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선 고지에 오른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는 사자성어 기호지세(騎虎之勢)를 인용했다. 안 의원은 “5선 이상은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형세나 마찬가지”라면서 “여기서 머뭇거리면 역사의 퇴행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해 국회 중진으로서 당 중진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했다. 전북지역 상황에 대해선 22대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반드시 한 몸이 돼야한다고 역설했다. 안 의원은 “전북은 이제 하나가 돼 싸워도 쉽지 않은 판국”이라면서 “내 것, 네 것 따지는 소아병적인 행태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전북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4·10 총선에서 서울과 경기·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등에서 출사표를 던진 전북 출신 22명(비례포함)이 금배지를 달았다. 전북이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연고를 갖고 있어 범 전북 출신으로 분류되는 당선인들도 6명이나 배출됐다. 35명의 전북 연고 당선인이 등장했던 21대 국회와 비교해 7명이 줄었지만, 당선인들의 면면을 보면 국민 인지도가 높은 스타·중진 정치인들이 대거 당선됐다. 이제는 이들이 전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소통 창구 마련 등 전북 정치의 외연 확장이 중요해졌다. 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절대적인 국회의원 수가 부족한 전북은 연고 국회의원의 지원사격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전북일보는 다음달 말 22대 국회 개원을 앞둔 연고 의원들을 만나 그들의 계획과 생각을 들었다. 국민의힘에서 5선 중진 반열에 오른 조배숙 당선인은 “22대 총선 결과에서 나온 대한민국의 동서 갈등은 국가적인 불행”이라며 "호남 일당 독주 완화를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역설했다. 지난 2001년 16대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조 당선인은 17대와 18대에 익산을에서 당선됐으며, 19대 때는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의 아픔을 겪었다. 20대 때 국민의당으로 지역구 탈환에 성공했다. 3선을 익산에서 한 만큼 조 당선인은 사실상 전북의 11번째 의원으로 분류된다. 전북 당선인 26선과 조 당선인의 5선을 합하면 무려 31선이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만난 조 당선인은 앞으로 4년의 임기 동안 정운천 의원의 의지를 이어받아 ‘묻지마 투표’ 관행을 깨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보수진영에는 귀한 여성 5선 중진의원임에도 중앙당 보직이나 내각 입각보다 지역민들과 호흡하며 ‘합리와 실용의 정치’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조 당선인은 “특정 정당(민주당)이 전북의 모든 권력을 독식한 결과는 여러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과의 격차를 보면 얼마나 전북에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지 한 눈에 볼 수 있다”면서 “대표적인 예로 충청과 강원의 현재 상황과 오늘날 전북의 현실을 보자”고 운을 뗐다. 그는 “충청권에 행정수도 세종에 이어 국회의사당도 세종으로 이전시킨다고 한다. 여기에 대전·충남 혁신도시도 약속돼 있다. KTX 오송역을 얻어낸 것도 충청지역이 전략적 투표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조 당선인은 “최근 발전한 지역을 보면 아주 전략적으로 투표를 한다"며 "한 번은 이쪽 당, 한 번은 저쪽 당, 이렇게 '스윙보트'를 하는 지역에 정치권이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조 당선인은 이 같은 상황에서 정운천 의원이 22대 총선에서 낙선한 데 대해 큰 상실감을 표했다. 조 당선인은 “전북에 정말 진심으로 하는 그런 국회의원이 있었을까”라며 “그 역할을 제가 해야 하는데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의정활동 목표에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꼽았다. 저출산을 완화할 수 있는 패키지 법안을 1호 법안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조 당선인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법안을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북특별자치도 성공과 관련해선 “중앙 정부에 있는 많은 인허가권을 이양받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조 당선인은 특히 전북의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선 ‘교육도시’로 브랜딩(branding)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당선인은 “미국 워싱턴 DC 인근의 교육도시인 하워드 카운티에 익산 학생들이 연수를 갈 수 있도록 2006년 시작했던 프로그램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됐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은 오히려 확산해야 한다”며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정치인들이 직접 발굴하도록 분위기를 다시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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