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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2일, 완주군 민생안정 지원금을 나눠 주는 날입니다. 오전 10시부터 지원금을 배부한다는 말에 일찌감치 마을 사람들이 경로당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진들은 다른 때보다 경로당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점을 고려해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화정마을 정기총회 때 지원금 배부가 점심 때쯤 끝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음식을 뽐낼 솜씨는 아니지만 맛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믿음 하나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일회용품 없는 전북'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전북특별자치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 전화해 다회용기부터 대여했습니다.(나름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쉬웠지만 장보기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애호박, 당근, 양파 등 구입할 것은 모두 정했는데 50인분은 처음이라 재료를 얼마나 사야 할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애호박을 들었다 놨다, 당근을 들었다 놨다, 양파를 들었다 놨다. 몇 번을 반복하고는 한 보따리 장을 보고 재료 손질부터 했습니다. 정말 많았습니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재료들.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많더군요. 문제는 장보기도, 재료 손질도 아니었습니다.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어마어마한 양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났습니다. 일단 경로당에 있는 큰 냄비란 큰 냄비는 다 꺼냈습니다. 육수부터 내고 재료를 넣고 팔팔 끓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소면을 삶아야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저희를 보고 불안해하셨습니다. 그냥 지켜보시는가 했더니 참지 못하고 한 마디씩 던졌습니다. "우리 청년 이장님들을 보고만 있자니 불안한디?"부터 "50인분은 쉽지 않을 텐데", "경로당은 좁으니께 다 가지고 나와. 우리가 소면을 삶을게"까지. "보기만 하셔요. 저희가 다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누구도 저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움을 받았습니다.(정말 저희끼리는 할 수 없는 일이더군요.) 마음은 급해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취재진들과 달리 속전속결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말 안 하고도 어르신들은 소면 씻기, 1인분씩 덜기, 그릇에 담기, 경로당으로 옮기기 등 각자 자리를 잡고 속도를 냈습니다. 어르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녁을 대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차저차 국수를 완성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일단 국수의 모습은 갖춰야 할 듯해 처음 만들어 본 달걀 지단까지 올렸습니다. 평소 취재진들을 묵묵히 지켜 보시던 아버지·할아버지들도 고맙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오늘 하루 힘듦을 다 잊게 만드는 한 마디입니다. 저희를 흔쾌히 청년 이장으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수 대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저희 사무실이자 화정마을 사랑방이 될 구 마을회관을 둘러봤습니다. 아참, 저희에게 드디어 집(?)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거미줄도 많고 곳곳에 흠집도 있고 고칠 게 산더미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진짜 화정마을 주민이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다음 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많이 놀러 와 주세요!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청년 이장 4일 차인 지난 21일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이사떡 돌리기 이후로 처음 둘러보는 마을입니다. 도시는 오전 10시면 시끌벅적하지만 화정마을은 꿈쩍도 않습니다. 날이 추워서인지 어르신들도 나오지 않고 골목길이 고요합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던 찰나에 경로당 앞 집에 소리가 나서 인사를 드리려다 젊은 여성 두 명과 마주쳤습니다. 청년 이장을 하면서 진짜 청년을 마주한 것은 처음입니다. "어이구, 그대들 왔는가. 나는 저 사람들이 자네들인 줄 알고 여즉 이야기 듣고 있었네!" 집 주인인 조재신(89) 할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시골 마을인 화정마을에는 간간이 포교를 위해 젊은이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대부분 사이비 종교에서 찾아오는 터라 곤란할 때가 많다는 게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젊은이들에게 커피를 내주는 이유는 좌우명 때문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약이 된다.' 이것이 할머니의 좌우명입니다.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할머니는 다 같은 사람이니 집에 오면 커피라도 주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시골마을 집까지 찾아와서 포교를 하는 것을 처음 접해본 청년 이장들은 적잖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나가다 저희에게도 인사를 건넸거든요. 아무튼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동네 할머니 집에서 커피를 마셔보는 일은 처음입니다. 진짜 이장이 된 듯했습니다. 할머니가 내 주신 맥심 커피는 달콤했습니다. 한 잔은 뜨거운 물에, 한 잔은 차가운 물에 타 오셔서 커피도 안 녹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지금도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림은 또 배우고 싶네. 참 재미있었거든. 내가 언제 이런 걸 해 보겄어." 할머니와 '청년 이장' 취재진 2명은 뜨거운 장판 위에 앉아 이불을 덮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는 취미 부자입니다. 30여 년 전부터 써 온 일기는 수십 권의 역사 책이 됐고 방 한 칸에는 취미로 그린 유화 그림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쉽게 우울해진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뭐라도 해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전에 화정마을로 찾아온 강사로부터 그림을 배우긴 했지만 혼자서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든 할머니는 그림을 배우러 나가기도, 그림 그리는 용품을 사기도 어렵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취미를 갖는 것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청년 이장들은 할머니의 소망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언젠가는 이뤄 드리는 날이 오겠지요. 어김없이 오후 2시가 되니 또 경로당이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최은주(80) 할머니의 팔순 잔치가 있는 날입니다. 떡, 통닭, 귤 등 음식을 잔뜩 준비해 오셨습니다. 취재진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팍팍 먹으라며 성화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생일 파티를 해 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아 이장님께 여쭤봤습니다. "우리는 원래 이래요. 생일이면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것 먹어요. 각자 준비해서 오는 거지, 뭐. 생일 아니더라도 장보러 나갔다가, 병원 갔다가, 어디 지나가다가 맛있는 거 보이면 사서 같이 나눠 먹어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에 달하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생일 파티를 한다니. 20대 취재진들은 팔순 잔치가 끝날 때까지 놀람의 연속이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최은주~ 생일 축하합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케이크도 없지만 상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일단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주 어릴 적 친구들과 모여서 생일 파티를 했던 게 전부이다 보니 너무 놀랐습니다. 취재진들은 '아, 우리가 틀에 박힌 생각을 했던 건가?' 반성했습니다. 공동체를 잊고 살았나 봅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 배워 갑니다. 할머니, 생신 축하합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화정마을은 고요합니다. 오래 전 내려앉은 고요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자동차 경적과 대화 소리로 가득 찬 도시와는 다르게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강아지·고양이의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정겨운 어르신들의 대화 소리도 들리지만 그것도 잠시 여느 시골 마을이 그렇듯 다시 고요해집니다. "왔어요, 왔어. 설날이 왔어." 그래도 매년 두세 번은 매일 고요할 것 같은 화정마을 골목길이 시끄러워지는 때가 옵니다. 바로 설·추석을 비롯해 집집마다 중요한 날이면 잠시나마 고요가 깨집니다. 평소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던 아들·딸, 손자·손녀, 친지 등이 찾아오기 때문이죠. 매년 설 연휴가 오기 직전 주부터는 매일 점심 먹고 경로당에 모여서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도, 오후 2시만 되면 게이트볼을 치러 가는 할아버지들도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여기저기서 '달달달달' 트럭 시동 거는 소리도 들립니다. 장보러 가려고 준비하는 듯합니다. "할머니, 날 추운디 어디 가시게. 할아버지랑 뭐 맛있는 거 잡수러 가셔?" 돌아오는 대답은 다 같습니다. "장보러 가야지!" 버스가 많지 않고 자동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인 시골 마을에서는 밖에 나가는 것도 일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시골 마을에서 시내로 통하는 읍내에 나간다고 한껏 예쁘게 꾸민 채 장보러 나갑니다. 두 시간 지났을까 화정마을로 트럭 한 대가 들어옵니다. 아까 장보러 가셨던 할머니·할아버지네요. "나 민생지원금 다 썼어!" 오율례(76) 할머니는 며칠 전 받은 완주군 민생안정지원금 30만 원을 하루 만에 다 썼습니다. 시아버지·시어머니부터 상할아버지·상할머니, 할아버지·할머니 차례 지내고 설 명절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 해서 먹여야 하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겁니다.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진과 한창 이야기 중이던 할머니가 갑자기 손뼉을 치십니다. "아! 내 정신 좀 봐. 나 오징어 안 샀네. 그 늘어난 오징어 전 부치려면 사야 하는디. 나 인자 생각 났네." 민생지원금 탈탈 털어 다 썼지만 아직도 장을 다 못 봤습니다. 할머니는 "홍어·조기는 샀고 고기도 좀 샀지. 딸·아들 주려고 그렇지, 뭐. 그래도 설인디 맛있는 거 해서 맥이고 싸 줘야지. 안 그려?"라고 말합니다.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 없다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번에는 얼마 안 혀. 그냥 겉절이 조금 하고 꼬막이나 좀 무치고 전 부치고 말라고. 몸 아파서 더는 못 하겄어." 최은주(80)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난 취재진의 머릿속에는 백 개도 넘는 물음표가 떠다닙니다. '다 하시는 것 같은데⋯?' 몸이 안 좋아서 전처럼 많이 하실 수 없다고 하시지만 준비할 게 산더미입니다. 자식들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하냐고 하십니다. 할머니의 푸짐한 마음에 괜스레 웃음이 지어집니다. 할머니는 "나 그냥 얼마 안 샀어. 소고기 2근, 돼지고기 조금, 배추 3포기, 꼬막 조금. 떡국은 끓여 먹어야지 않겄어? 자식·손주들 온다는디 어떻게 안 혀, 안 그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나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혀. 말이 그렇지. 먹을 건 조금 허야지 않겄어?" 다른 할머니는 놀러가신다고 자랑하십니다. 이칠월(90) 할머니는 최장 9일에 달하는 설 명절 연휴를 맞이해 자식·손주와 놀러가기로 했습니다. 취재진이 "그러면 이번에는 장만도 안 하시겄네?"라고 말하자 "그치. 이번에는 자식·손주들이 놀러가자고 하네? 그래도 집에서 먹을 건 좀 해야지. 겉절이나 좀 하고 전이나 부치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설 연휴 1박 2일 여행만 갈 뿐 음식 장만 준비는 똑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진짜로 할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몸이 아파도, 안 해야지 생각해도, 진짜 조금만 해야지 생각해도 오랜만에 집에 올 자식·손주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 지금도 화정마을 할머니·할아버지는 장보러 나가시고 장만 준비에 바쁘실 겁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지역이 위기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 소멸'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대한민국의 화두는 예나 지금이나 '지역소멸 위기 극복'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전국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전북일보는 지난해 10월 도내 지역종합일간지 최초로 디지털미디어국을 신설하고 독자들과 함께 호흡할 '지역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했다. 아직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지만 연말부터 '지역 뉴스'에 집착해 왔다. 지역 뉴스를 전달하는 지역 언론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무엇이 있을지 몇 날 며칠을 생각했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3년 전 지역 언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부산일보 <산복빨래방>, 경남신문 <심부름센터>를 잇는 제2의 프로젝트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어느 날 MZ세대로 구성된 취재진들이 농촌마을의 '청년 이장'이 돼서 도민들과 함께 호흡하면 어떨지 상상해 봤다. 지역 언론은 가장 가까운 삶의 현장에서 지역민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노인만 남은 농촌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을 것만 같았다. 독자에게는 도민들,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등 '일석삼조 프로젝트'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지역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신년 기획 <청년 이장이 떴다>가 탄생했다. 청년 이장의 역할을 하면서 농촌마을이 가진 이야기를 전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프로젝트다. 여기에 더해 농촌마을 어르신들의 꿈까지 실현해 주기로 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찐(진짜)' 지역 밀착 저널리즘이라 걱정도 되지만 일단 진행해 보기로 했다. 신년 기획 첫 번째 마을은 35가구 55명이 살고 있는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이다. 청년 한 명 없는 화정마을에 청년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화정마을 주민들은 영어 공부·요가·뮤직 비디오 촬영 등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쉽게 배울 수 없었다. 보행 보조기 없이는 거동이 불편해 읍내에 나가는 것도 어려워 매일 경로당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화투를 치는 게 일상이다. 그래서 청년 이장이 된 취재진들이 어르신들의 일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도내 시·군에서 활동 중인 청년들을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초청해 어르신들에게 배움을 선물하면서 지역과 청년, 어르신을 연결할 계획이다. 지금 당장 매주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감도 안 잡히지만 일단 취재 현장·사무실 대신 경로당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전북일보 신년 기획 '청년 이장이 떴다'는 매주 월요일 전북일보 지면과 인터넷 신문·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1일차 임무는 '떡 돌리기' '청년 이장' 1일차 임무는 떡 돌리기. 아직 집은 없지만 이사떡부터 돌리기로 했습니다. 본 건 많은 청년 이장은 완주 화정마을로 가기 전 회사 옆 떡집을 찾았습니다. "이사를 가면 떡을 돌려야 한다"는 말에 미리 맞춰 놓은 팥 시루떡을 찾아 화정마을로 출근했습니다. 첫 출근일은 지난 15일. 본사 기자들로 구성한 취재진 3명은 직접 포장한 팥 시루떡·신문을 들고 화정마을 35가구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첫 인사는 "이 청년들은 누구디야?" 아니면 물음표 세 개 뜬 얼굴이었습니다. 기자라고 소개하는 게 익숙하지만 오늘 만큼은 먼저 "3개월 동안 화정마을에서 지내게 된 청년 이장들입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사떡을 건넨 청년 이장들에게 마을 주민들은 '정(情)'을 주셨습니다. 대문 앞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시는가 하면, 간식·따듯한 차를 주시는데다 반가워 하시면서 안아 주시는 어르신들까지. 1일차지만 모두 격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기획 잘 될 것만 같아요.) 2일차 임무는 '네일아트' 일단 스킨십 만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겠다는 생각에 어머님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분홍·빨간색 매니큐어를 챙겨 왔습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요.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고 계셔서 바로 네일아트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취재진들은 작전을 세웠습니다.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을 수 없어 화투를 구경하는 할머니들을 공략하자는 작전이었죠. "아고, 손도 고우시네요. 이거 손톱 물들이면 더 예쁘시겠고만."이라고 말하자마자 돌아오는 답은 "나 칠해 주려고?"입니다. 작전 성공입니다. 진짜 손이 고우셨던 박복순 할머니를 첫 손님으로 맞이했습니다. 박복순(90) 할머니는 평생토록 매니큐어를 칠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르마는 없거나 5대5뿐이라고 알고 살았던 할머니에게 손톱은 사치였다고 합니다. 스물둘에 결혼해 70여 년을 화정마을에 살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 챙기느라 정신 없이 사셨다는 거겠죠. 할머니의 손톱에는 별빛이 가득 올라가고 할머니의 눈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습니다. "반짝반짝 예쁘네. 설에 자식·며느리·손주 오면 자랑해야겠어. 고맙네, 고마워." 그렇게 열린 화정경로당 네일아트 숍은 대기 번호까지 생겼습니다. 1번, 2번, 3번⋯. 셀프 네일은 해 본 적도 없지만 서툰 실력으로 꼼꼼히 발랐습니다. 화투 치던 할머니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화정마을 할머니들 늙어서 호강 받네." 대기 번호에 이어 다음주 예약 손님까지 생길 정도로 개업 첫 날부터 관심을 받았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청년 이장 또 왔어? 올 줄 알았당게." 오늘(17일)도 어김없이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모두가 취재진을 반기지만 유독 사랑을 주시는 이칠월(90) 할머니는 "어떻게 인사가 그려! 또 왔어가 뭐여! 잘 왔다고 해야지!"라며 오자마자 큰 웃음을 주십니다. 갑자기 경로당이 떠들썩해졌습니다. 치매 예방 차원에서 꼬박꼬박하는 10원 내기 화투가 말썽입니다. 누가 10원을 더 가져가면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아니, 나 돈 안 가져 갔다니께? 누구여! 다 꺼내 봐!" 언뜻 보면 싸우시는 것 같지만 그냥 대화인 듯했습니다. 화투를 구경하던 이덕순(82) 할머니는 익숙하다는 듯 "다 나오랴! 화투 치는 사람들 잡으러 경찰 왔디야! 시끄라!"라며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정리되자마자 경로당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참, 오늘은 화정마을 정기총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청년 이장' 3일 차지만 정기총회 초대를 받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평소 경로당에 자주 찾지 않는 할아버지들까지 시간 내 모두 자리하셨습니다. 취재진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쓴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지난해 화정마을 수입·지출 결산 보고 종이까지 들고 처음 마을 정기총회에 참여했습니다. 지금도 집은 없지만 진짜 마을주민이 된 것 같았습니다. "미숙하지만 많이 협조해 주시고 조언해 주신 덕분에 큰 일 없이 지난해 잘 보냈습니다. 부녀회장을 정해야 한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강창현 이장님의 인사말로 정기총회가 시작됐습니다. 이날 정기총회의 큰 안건은 부녀회장 선출, 야유회 일정 등이었습니다. 부녀회장은 마을주민 만장일치로 이복순(77) 할머니가 됐습니다. 화정마을은 1년에 한 번씩 야유회를 갑니다. 평소 자동차가 없어 시장·병원 가는 것도 어려운 마을주민들은 멀리 바람 쐬러 가는 야유회가 기다려집니다. 평일에 갈지, 주말에 갈지부터 며칠에 갈지, 어디로 갈지 모두 마을주민에게 선택권을 부여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아니, 그건 이장이 정해야지. 집행부끼리 정해서 어디로 가자고 하면 갈 겨." 끝나고 작은 간식 파티가 열렸습니다. 먹을 것을 보고도 그냥 가면 서운하다는 주민들의 지적에 자리 잡고 같이 간식을 먹는 저희에게 첫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경로당 앞 집에 있는 개들이 마을을 돌아다녀 집도 못 가겄어. 찍어서 어떻게 좀 해 줘 봐요." "청년 이장님들, 노래교실 같은 건 어려울랑가?"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일단 해결해 보렵니다. 하나씩 해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심부름이 들어오면 좋을 텐데. 얼굴도 다 텄으니 다음주면 많은 의뢰가 들어오겠지?' 기대 반, 걱정 반. 앞으로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퇴근합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커서 마을을 지키는 이장이 됐다. 소년이 크는 동안 많은 사람이 떠나고 한때 시끌벅적했던 마을은 조용해졌다. 이제 마을에 남은 건 노인들뿐. 마을 주민 중에서는 청년(?)으로 통하는 강창현(63) 씨는 고향에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이장을 맡았다. 화정마을에서 산 지는 얼마나 됐나요? "여기 화정마을에서 태어나서 쭉 살다가 결혼하면서 잠깐 고향을 떠났어요. 처가로 이사했다가 23년 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지는 10년 정도 됐네요.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이 마을 골목길은 다 흙길이었는데 길도 넓어지고 슬레이트 지붕도 다 신식으로 바꿨어요. 옛날에 이야기하던 시골 마을이 아니죠." 나고 자란 마을이자 지금 책임지고 있는 화정마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요. "우리 화정마을은 일단 단합이 정말 잘 돼요. 여기가 귀촌한 사람도 들어오곤 하는데 그 사람들과 마을 토박이 주민도 잘 지내는 편이에요. 매년 봄이 되면 마을 주민끼리 여행도 가요. 생일도 챙겨 드리고 새해에는 신년회 열어서 잔치도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곤 해요." 이장이 된 지 2년 정도 됐다고 들었는데요. "네, 벌써 2년 차네요. 이장은 보통 한 번 하면 3년까지 해요. 연임까지 하면 최대 6년까지 가능하죠. 이장은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보통 그 사람이 해요. 여러 명이 지원하면 투표도 하는데 다행히 제가 나올 때는 저 혼자 이장직에 지원했어요." 마을 이장이라고 하면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보통 면사무소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지원사업을 비롯해 전달사항 같은 것을 주민들한테 전달해 주죠. 마을에서 애로사항이 나오면 행정에 전달해 주기도 하죠.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을 가져오기도 하죠."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은 뭐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화정마을은 오폐수가 나가는 하수도가 없어요. 어느 집 마당에서는 악취가 심하게 올라오기도 할 정도예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 이 오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하수도 설치하는 사업을 가져오려고 하죠. 다른 마을도 비슷한 애로사항이 있다 보니 신청한다고 해서 다 가지고 올 수는 없지만 주민들 불편사항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장으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은데요. "마을 주민들도 사람이다 보니 다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죠. 의견이 다른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주민들 의견까지 다 들어 줘야 하다 보니 어려워요. 저도 마찬가지고 이장들은 보통 본업이 따로 있다 보니 시간을 내는 일도 쉽지 않아요. 어떨 때는 정말 버거워서 이장직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장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그래도 내가 나고 자란 우리 소중한 마을이잖아요.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부모님이 사셨던 곳이기 때문에 봉사하고 싶었어요. 이장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무조건 뭐라도 마을에 들여서 주민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목표예요."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청년 이장이 떴다] "잘 부탁드려요"⋯ 정성 가득 담은 한 그릇 맛있게 ‘후루룩’
[청년 이장이 떴다] 함께 노래 부르고 음식 나눠먹고 ⋯ '팔순잔치' 동네가 들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