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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우리가 바라는 미래’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는 어떤 곳이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러한 미래를 원하고 궁금해하는 것인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피동체에 의해 이끌리고 떠밀려서 살고 있다. 내면의 문제와 외부의 온갖 것에 끌려다니느라 자신조차도 망각하고 살면서 내부적 문제와 외부세계의 모든 관계들에 대하여 깊은 사고없이 살고있다. 부정하면 존재할 수 없고 인정하면서도 종속되어 고통을 느껴야 하는 삶, 이것이 우리 중생들의 세계다.

 

세계속에 있는 모든 것이 스스로 주인이며 관계성속에서 살아가되 끌려가지 않고 창조하는 삶,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의 미래다. 욕망으로 인한 고통, 부대끼는 사회로부터의 갈등이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다보니 새해를 맞아도 넋두리가 심하다.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종교마다 다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개인의 수행과 안락이 첫째로 꼽힐수 있다. 그러나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개인의 영광과 안락에 앞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 나약하고 핍박받는 계층에게 희망과 용기, 평등한 기회와 인간다운 대접, 그리고 그 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종교의 모습은 배부르고 힘있고 유명한 사람들의 것처럼 보인다.

 

총선이 얼마남지 않았다. 자연히 요즘 언론의 초점은 정치계소식이다. 선거때마다 국민을 위해서 지역구민을 위해 큰절을 하고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던 사람들이 내내 게으름을 피우고 싸움질만 하더니 요즘은 여·야당이 연대해 철밥통을 지키겠다고 야단이다. 시민단체의 연대에 밀려 재협상을 시도한다고 하지만 여·야 의원들의 협동심이 어디 가겠는가.

 

새해를 맞는 우리의 바람은 무엇인가. 또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새천년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물음에 우리의 소망과 복은 스스로 이뤄진다. 주는 것 없이 받으려는 사람은 도둑이거나 거지다. 소망과 복은 먼저 주면 나중에 받는 것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오는 법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탓이며 나의 잘남보다는 너의 덕분임을 명심하여 새천년의 거룩한 아침을 맞는 것이 지금은 가장 필요한 일이다. 종교간 화합, 정치계와 사회단체의 협력, 시민들의 나눔은 밀레니엄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며, 우리가 바라는 미래다.

 

/수진스님(전북불교회관 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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