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계엄군과 맞선 시민·보좌관 등 대처...국회의원들 담넘어 국회 진입
표결 뒤 환호, 국회방송과 뉴스지켜보던 국민 안도
위헌과 위법 논란에 직면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이 6시간만에 철회된 배경에는 국회와 시민들의 기민한 대처가 있었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1981년 1월 이후 43년만의 일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이번 계엄까지 모두 17번의 계엄이 선포됐다. 가장 최근 계엄이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직후인 1979년 10월 27일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발령한 비상계엄이었다. 440일 동안 지속된 계엄은 1981년 1월 24일에 해제됐다.
계엄령이 실효를 발휘하지 못한 것은 변화한 시대상에 있다.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계엄상황을 생중계했고, 계엄군은 저항하는 시민과 국회의원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계엄군과 경찰은 국회의원과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을 뿐 체포나 구금 등의 조치는 하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까지 155분간의 전 과정이 모여든 국민들과 언론에 의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외신들은 계엄군이 장악하려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 상황을 대서 특필했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계엄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과거에는 언론이나 권력기관만 통제하면 됐지만. 2020년대에는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정보를 막을 수 없어 사태가 금세 일단락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우원식 국회장과 야당 국회의원들은 전시를 방불케 하는 재빠른 행동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심야 시간에 국회의원들이 신속하게 모일 수 있었던 배경은 12월 초가 예산철이라는 데 있었다. 10명 전원 민주당 소속인 전북 국회의원들 역시 국회경내나 인근에 머문 의원이 많았다. 가장 본회의장에 도착한 김윤덕 의원은 국회에서 야간 회의 중이었다. 이성윤 의원은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국회까지 긴급 이동했고, 시민들이 방패가 돼 이 의원의 국회 월담을 도왔다. 국회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호영 의원은 출입구 통제 전 국회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원택 의원 역시 국회 인근에 머물다 계엄 소식을 듣고 통제 전에 국회에 진입했다. 이춘석 의원은 국회에 질주하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포착됐으며, 70대의 고령인 정동영 의원은 월담해 국회에 들어온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같은 시각 계엄군 280여 명이 국회 본관에 속속 들어오고 있었으나 보좌진들이 친 '인간 바리게이트'에 막혔다. 정족수 충족을 확인한 우원식 의장은 헌법과 법률에 맞는 과정을 거친뒤 곧바로 계엄 해제안을 상정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친한계 국회의원 10명을 이끌고 등장했다.
국회에 모인 국민들은 과거와 달리 화기로 무장한 계엄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 막아섰다. 계엄군 소속 군인들은 막아서는 시민들과 실랑이를 벌였으나 진압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계엄군 입장에서도 만약 국회의원이나 시민들을 진압하거나 체포할 경우에 생길 국제사회의 시선에 부담이 큰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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