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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계화산 봉수제 재현

지신밟기와 제례의식등 봉수대에 불을 피워 조상들의 얼과 봉수대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지역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부안군 계화산 봉수제가 16일 오후 계화산 정상에서 최규환군수와 김한태계화청년회장을 비롯 김진태계화법인어촌계장, 출향인사및 지역주민등 관계자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현됐다.

 

봉수란 높은 산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를 올려 변방의 위급상황을 릴레이식으로 중앙에 전하는 통신수단의 하나로 고려 의종3년(1149)에 봉수제도를 법으로 제정, 근대 통신제도가 확립되기전 봉수제도와 우역제도, 파발제와 함께 주요 통신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봉수의 종류는 수발기관에 따라 직선봉수와 간선봉수가 있으며 직·간봉수는 해안이나 국경지역에서 시작하는 연변봉수와 이를 이어받아 서울로 연결하는 내지봉수, 내지봉수의 내용을 받는 경봉수등 봉수선로에 따라 3종류로 나뉘어 지고 전국의 주요 간선로를1∼5로로 나누었다.

 

전북지역의 봉수로는 해안선을 연결하는 제5로의 연변봉수와 내륙의 내지봉수로 20여개소가 동국여지승람등 문헌에 기록돼 있다. 계화산 봉수대는 고려 또는 조선조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라도 순천 돌산도의 방답진을 기점으로 서울의 목멱산까지를 잇던 약 60여개의 직봉들 중의 하나이다.

 

당시 일본과 중국의 침입을 조정에 알리는데 사용돼 왔으며 평시에는 횃불이나 연기를 1개 피워놓고 적이 나타나면 2개, 적군이 육지에 접근하면 3개, 상륙하면 4개, 아군과 적군과의 교전이 벌어질경우 5개를 피우는등 위급상황에 따라 불이나 연기로 이를 조정에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활용돼 오는등 그 역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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