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을 통해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포용정책을 설명하고 평화통일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했다.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인 평화정착 및 남북간 화해협력을 위한 ‘베를린 선언’이다.
‘베를린 선언’은 4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바, 첫째는 정경분리원칙에 의한 남북한간 민간경제협력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부당국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 둘째는 우리 정부의 당면목표는 통일보다는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임을 인식하고 북한은 우리의 화해와 협력제안에 적극 호응해줄 것, 셋째는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적극 응할 것, 넷째는 그러한 모든 문제해결을 위한 특사교환제의의 수락이 그것이다.
김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우선 민간차원의 남북경제협력의 범위를 정부차원으로 확대하고 남북간 화해협력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또한 통일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선언’이라는 방법을 통해 국제사회에 한반도 냉전해체를 위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면서 우리 제안의 수용을 북한에 공개적으로 촉구했다는 점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정경분리원칙에 의한 민간경제협력을 추진한 결과 지난 2년간 남북교역량이 3억4천만달러에 달하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북 진출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당국간 협력필요성을 제기하고 특사교환을 제의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베를린 선언’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1970년대초 빌리 브란트의 동서독 화해협력의 통일정책이 1990년 결실을 맺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빌리 브란트는 1민족 2국가론을 주창하면서 지속적으로 동독과의 관계를 개선하였고 헬무트 슈미트와 헬무트 콜 전직수상들은 브란트의 통일정책을 이어 받아 인적교류와 경제교류를 했으며, 언론, 문화예술, 체신교류등 끊임없는 교류를 추진했고 그 결과 통일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예컨대 통일 2년전인 1987년 약 5백50만여명의 서독인들이 동독을 방문했고 약 3백40만여명의 동독인들이 서독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서서히 무대에 올려진 우리의 햇볕정책이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베를린 선언’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부는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남북화해협력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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