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익산의 역사·문화 가이드
-논문집 익산문화·심포지엄 등 열어
-매달 유적답사 등
-재정 어려움으로 논문집 못내고 활동도 위축
회원들 사이에서도 이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고적(古蹟)’‘선양(宣揚)’이라는, 요즘사람들에게 너무도 생소하고 촌스러운(?) 이름때문에 총회를 열기도 했다.
익산 고적선양회(古蹟宣揚會).
말그대로 ‘익산의 옛유적들을 널리 알린다’는 의미지만 일반인들에게 거리감을 주기에 충분한 이 이름 때문에 적잖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61년 익산군 금마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익산고적보존회를 이어받은만큼 그 이름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웠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고적선양회(회장 김주성)의 활동을 모임의 이름에서 풍기는 그런 분위기로 인식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84년 일찌감치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바탕으로 창립한 이 모임은 그동안 지역의 문화재를 학계에 보고하고 지역문화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는 등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온 이들만큼 문화운동의 실천력이 탄탄한 모임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익산 고적 선양회는 한달에 한번정도 유적답사나 갖는 그런 형식적인 모임이 아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땅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알아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같은 것이 바로 이들을 고생속에서도 지역의 문화유적 지킴이로 남게 만들었다.
지역문화발굴과 선양을 위해 2백여회가 넘는 월례발표회와 고적답사를 가졌고 완주 제네리 백제고분, 익산 성포별신제 등을 발굴해 학계에 보고하고 회집 ‘익산문화’를 통해 지역문화와 관련된 논문 30여편을 발표했다. 특히 93년 전적과 고문서를 조사 발간한 3집은 현재 정신문화연구원 교재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의 왕성한 활동에서도 충분히 드러나듯이 회원 89명 가운데 ‘무늬만 회원인 사람’은 없다. 회원 모두가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오랜 활동은 이미 익산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관광객들이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을 찾을 때면 안내는 이들의 몫이 된다. 최근에야 비로소 중국통역가이드가 배치됐지만 이전까지는 회원들 이외에는 좀처럼 나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꼬박 반나절을 안내해야하는 수고로움이지만 그런만큼, 그들은 자체로 또다시 신명이 난다. “우린 익산의 대표 가이드입니다. 시민들 모두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유적들을 자신있게 외지의 사람들에게 안내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바로 우리 모임이 꿈꾸는 때입니다”.
지난해 문을 연 익산문화원 개원에도 회원들이 그 산파역을 맡았던 것처럼 활동가로서도 적지않은 일들을 해왔다. 특히 미륵사지복원에 대한 익산사람들의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1백만인 서명운동이나 미륵사지 복원 티셔츠 입히기 운동 등은 그 결실을 이뤄내기도 했다.
지자체 이후 지역축제가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났던 96년 이들은 ‘지역축제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전국규모의 심포지엄을 열어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98년과 99년에는 함평향토사연구회와 경주신라동인회 등과 자매결연을 맺어 지역간 문화교류에도 나서고 있다.
“몇년만 지나면 창립 20년이 된다. 그동안 해놓은 것이 많기도 하지만 아쉬운 일도 많다.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만만치 않다”고 말하는 김주성회장.
한달에 한번있는 답사비도 겨우 회비로 충당하고 있는 형편으로 몇해째 자체 논문집 ‘익산문화’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십시일반으로 올해서야 마련한 사무실운영비를 마련하는 일이다. 회집 ‘익산문화’가 몇해동안 나오지 못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여전히 큰 과제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곁에 두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 어려움을 딛고 기꺼이 익산사람들에게 그 문을 열어주고자하는 모임이 바로 익산고적선양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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