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일곱, 희수(喜壽). 그러나 여전히 왕성한 활동으로 서단을 아우르고 있는 원로서예가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 77)씨가 모처럼 개인전을 마련했다.(12일까지 전북예술회관)
전북서단의 한축을 내려놓은 그의 개인전은 90년 군산전시이후 꼭 10년만의 자리다. 부단한 활동의 의욕과 저력에 비추어보자면 여산의 개인전은 참으로 오랜 준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셈인데 전주전은 근 30여년만의 자리인 만큼 이번 개인전에 대한 그의 마음가짐을 짐작할 수 있겠다.
“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탓이 크고, 또 한편으로는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앞서 함부로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성격탓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희수도 되고해서 마음을 먹은게지요.”서력 40여년의 긴세월을 이어왔으면서도 여전히 겸손한 그는 70점 작품을 통해 10여년동안 갈고 닦은 자기 수양의 과정을 그대로 전해준다.
“늘 글씨를 쓰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그래서 더욱 정진하는 과정, 서예의 미덕은 바로 자기 스스로 수양하며 반성하고 뒤돌아보는 그 과정에 있다.”고 말하는 그는 다양한 서체를 통해 서예의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준다.
글씨 자체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작품마다 담고 있는 고전의 의미가 별개일 수 없다고 강조하는 그는 우리 삶의 덕목을 비추어내는 내용을 한편한편마다의 작품속에 담아냈다. 가장 돋보이는 서체는 왕희지의 행서체. 법첩의 근간이기도 한 왕희지체를 통해 늘 서예의 정신을 읽어낸다는 여산은 근래들어서는 추사의 글씨체를 비롯해 옛사람들의 정신과 미학을 바탕으로 새롭게 써낸 창작서체도 함께 선보였다.
오랜동안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서예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그는 서예인구를 저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해온 서예가다. 퇴직이후에도 이러한 열정이 그대로 이어져 일흔일곱살의 나이가 믿기어지지 않을 만큼 왕성한 활동으로 전북서단을 탄탄하게 지켜오고 있는 그는 한국서예연구회장과 한국서가협회 고문을 맡고 있는 영원한 현역.
서예공모전을 통해 신인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주도하면서 끊임없이 서예 대중화를 실현해나가고 있는 여산은 서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창작에의 열정이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시회에서 눈길을 모으는 또하나의 풍경은 여산의 아내와 딸들, 며느리의 작품들. 서예와 함께 해온 여산의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수한(?) 가족들의 서예 수준이 빼어나다. 여산은 “내 삶속에서 서예는 한몸이다. 자연히 내 식솔들에게도 그 호흡은 전해져서 생활과 분리되지 않고 늘 가족 전체의 삶에 함께 있었던 덕분에 오늘과 같은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익산 출신으로 46년동안 지켜온 교육자로서도 이름을 얻었지만 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서예활동을 시작, 72년에는 국전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78년에 국전 초대작가가 되었던 그는 각종 기획전과 공모전 심사위원 등 전북 서단은 물론, 우리나라 서단의 중심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해왔다.
“서예는 늘 자신을 뒤돌아보아 부족함을 깨우쳐 주는 바탕”이라고 말하는 원로 서예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배인 이 전시회는 적지 않은 감동이거니와 그 자체만으로도 가르침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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