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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밴드 M, ‘너희가 재즈를 아느냐’

- 20년 넘게 소리없이 해온 연주활동 재즈밴드 M
- 7일 뜨락음악회 출연, 하루 4시간 넘게 맹훈련

 

재즈밴드 M. ‘M’은 ‘mystery’나 ‘man’을 의미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창단 20년이 넘도록 변변한 이름도 없이 활동했던 이 밴드는 지난 연말 전주시가 열었던 ‘새천년 대동한마당’에 출연하게 되면서 ‘재즈밴드 M’이라는 이름을 급조했다.

 

우연한 기회에 밴드의 활동을 알게된 당시 행사기획자였던 문윤걸씨(문화평론가)가 임의로 자신의 성을 따붙힌 이름.

 

이쯤되면 ‘무슨 밴드가 이름도 없이 20년 넘게 활동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한때는 이름을 날렸던(?) 면면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의구심은 강해진다.

 

학교 선후배 또는 음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맺어진 이들. 이영철(57·피아노), 최인철(48·베이스), 오상락(47·섹스폰), 이창호씨(48·드럼)가 바로 밴드의 식구들. “단지 음악이, 재즈가 좋아서 연주를 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굳이 이름의 필요성은 없었던 것이다.

 

농업, 농장경영, 호프경영 등 직업도 다양한 이들이 만난 것은 20여년이 넘는다.

 

고등학교 브라스밴드 주자로 또는 당시 붐을 일으켰던 통기타연주자 등으로 활동했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뭉쳐진 것.

 

중년들의 향수에나 있을법한 고교 브라스밴드가 바로 이들의 꿈을 키운 바탕이 됐고 10여년전까지만 해도 방송사의 전속밴드로 활동했다.

 

70∼80년대 도내 브라스밴드의 실력은 전국적으로 손꼽힐 정도. 70∼80년대 지방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의 반주를 담당하는 전속밴드로도 활동해왔다.

 

오랜동안 연주활동의 끈을 놓치않았던 것도 이 때문. 90년대 들어 지역방송사의 재정적인 문제나 로컬프로그램이 줄어들면서 전속밴드가 사라졌다.

 

각자 생업의 길을 찾았지만 밴드의 연주는 계속됐다. 악보는 있지만 연주는 다른 음악-재즈.

 

연주자들끼리 ‘질문’하고 또 ‘화답’하는 듯한 재즈연주는 무엇보다 연주자들간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외국인이 판소리를 할 때의 어설픔, 그것은 한국사람이 재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주를 하게될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은 재즈의 참맛을 살리는 연주를 항상 고민한다.

 

변변한 연주회도 갖지 않았다고 재즈밴드 M을 단순한 동호회 수준의 아마츄어로 본다면 오산이다. 연주자들 사이에서 ‘전주의 최고가 한국의 최고’로 통했던 70∼80년대 그들은 그 한복판에서 활동했던 연주자들이다.

 

멤버인 최인철씨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좀더 많은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렸을때 접하는 음악이 평생을 두고 남기 마련이다. 너무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잊혀지는 지금의 대중음악보다 정성과 땀으로 만들어지는 진지한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난 7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리는 ‘가을날의 뜨락음악회’에 기꺼이 출연의 뜻을 비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틈나는대로 연습해오긴 했지만 음악회 출연을 앞두고 스튜디오에 모여 하루 4시간이 넘는 맹연습(?)을 해왔던 이들. 가을밤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곡들로 박물관을 찾은 관객들에게 보답의 선율을 들려줬다.

 

40∼50대 중년의 나이. ‘단지 재즈가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 줄곧 활동을 해온 이들이지만 함께할 젊은 후배들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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