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안에 깊숙이 숨겨진 빛깔을 찾아내는 작업. 조금만 빨라도 지나치기 쉽상이고 조금만 느려도 놓치기 쉬운, 천연염색가 한병우씨(39·‘솔비’ 대표)는 매일매일 그 빛깔을 찾아 나선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정보통신업계·그래픽 디자인·웹 디자인 등 디지털로 무장한 채 보낸 8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벗어던지고, 한씨가 아날로그식 천연염색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근 것은 올해로 4년째. 임실 오수 하남리의 산자락 밑에서 어머니가 직접 베를 짜고 치자물을 들이는 모습을 보고 자란 그에게 천연염색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인터넷 자료와 많은 책들을 독학하고 수없이 염색작업을 하면서 깨우친, 스스로 몸으로 체득한 소중한 것들이다.
“1년에 3백일 정도 염색에 매달린다”는 그의 주 종목은 식물염색. 벌레집과 분비물로 끓여내는 동물염색도 간혹 하지만, 그는 깊은 맛이 느껴지는 갈색 계열의 밤껍질 염색과 황금색이나 올리브색을 만들어내는 양파껍질 염색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천연염색을 한다고 하면 생활한복을 입고 야외의 넓은 공간을 떠올리지만, 저같이 작업하는 사람은 좁은 공간이 좋아요.”
그는 스무평 남짓한 공간에서 모든 작업을 이뤄낸다. 염료를 끓여서 색소를 추출하고, 염색하고 건조까지 전통방법을 고수하다보니 대량으로 할 수 없을 뿐더러 혼자 작업하는 그에게 넓은 공간은 오히려 버겁다. 염료로 쓰이는 쑥이나 양파껍질, 밤껍질 등은 시골 장터에서 약재는 보통 약재상에서 직접 구한다.
대부분의 천연염색가들이 작가로부터 시작해 사업으로 그 영역을 넓혀 나가지만 한씨는 천연염색을 사업으로 시작했다. “감각은 현대적이고 심플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기본으로 장기적인 생명력있는 작업을 위해 호원대 산업디자인과에 편입했다.
“대충 대충하는 어머니들 간 맞추기식이 아닙니다. 전통방법을 철저하게 고수하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죠.”
한씨 작업의 특징은 계량화. 눈대중 손짐작으로 하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는다. 그의 보물 자료들을 살짝 엿보니 빛깔 좋게 물든 천마다 원료와 매염제, 농도 등을 나타내는 숫자들이 깨알만하게 적혀있다. 색깔의 작은 차이도 소홀히 않고 실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자료화하다보니 어느새 요즘 유행어대로 머리 속에서도 색깔을 그리게 됐단다.
“화학염색은 색깔이 예쁘지만, 천연염색은 산뜻하면서도 깊이가 있다”는 그는 정성이 들어간 만큼 보여지는 것이 천연염색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업이 더 커지더라도 염색과 디자인 부분만은 직접 하겠단다.
‘천연염색’이라는 말에 한 템포 느린 여유로운 삶이 그려지지만, 그는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작업실에 들어선다. 9시부터 2시까지 꼬박 염료를 끓이고 5시까지는 염색을 하고 천을 널어 그늘에서 건조시키는 작업. 정확하고 부지런한 그래서 제대로 빛깔을 찾아내고야 마는 고집스런 천연염색가의 하루다. 241-7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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