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1 17:48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옛 문서의 향기]물건 사고팔듯 매매

1869년 이생원댁 사내종 월봉이 상전의 지시에 따라 18살 먹은 계집종 쪼깐을 100냥에 팔면서 작성한 문서 ([email protected])

‘인신매매’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사람을 팔고 사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나 할 짓으로 매도되곤 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신매매’인지 아닌지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모호하기도 하고 사실상의 면죄부를 가지고 있는 경우들도 비일비재하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선불금’이나 얼마전 현대판 노예문서라고들 했던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계약체결문서 등처럼 경제적 가치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경우들도 어쩌면 광의의 ‘매매’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닌 조선시대 노비들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조선시대 노비들을 세는 단위는 몇 명(名), 몇 인(人), 몇 원(員) 등이 아니었으며 입의 수를 세는 ‘몇 구(口)’였다. 사람에게 있어 하나밖에 없는 입의 수로 사람을 세는 것이었으니 노(奴) 몇 구, 비(婢) 몇 구라 표기하였으니 몇 두(頭)라 표기하는 재산가치 있는 가축과 별반의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무릇 모든 노비 매매는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사사로이 몰래 매매를 하였을 경우에는 관청에서 그 노비 및 대가로 받은 물건을 모두 몰수하였다. 현존하는 노비매매문서는 이렇듯 매매를 증빙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토지매매와 마찬가지로 관청에 신고하여 입안(立案)을 받아야 했다. 토지매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입안 절차를 준수하였는데, 그것은 노비들의 도망과 출산 및 사망 등으로 ‘재산변동’이 심하여 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소유를 증빙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노비의 가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1744년 전라도 부안현에 살던 김생원이 고부의 조생원으로부터 사내종 3명을 구입하면서 지급한 금액은 18냥으로 한 명당 6냥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1697년 무장현에 살던 오정훈이 사내종 1명을 15냥에 구입한 것에 비하면 반절 정도로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이외에도 1812년 계부(季父)가 조카 낙선에게 사내종 2명을 26냥에 방매한 반면, 1851년 김진탁이 윤필검에게 판 계집종 1명의 가격은 15냥이었다. 또한 1869년 매매된 계집종 쪼깐(足間)의 가격은 무려 100냥에 달하였다. 이처럼 노비의 가격은 시대에 따라 노비의 상태에 따라 딱히 정해진 가격이 없었다.

 

지불대금의 경우 노비는 가옥이나 토지와 같이 고가의 거래에 해당되어 1690년대 이전에는 말이나 은(銀), 포(布) 등으로 지불하였으나 1690년대 이후에 들어서면서는 동전으로 지불하였다.

 

또한 매매문서의 작성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매수자와 매도자 자신이 매매서명을 하는 경우 뿐 아니라 상전을 대신해서 노비가 매매문서 작성의 주체가 되기도 하였다. 매매문서에는 매매 당사자는 물론이고 증인도 함께 서명하였는데 글을 모르거나 맹인 경우 서명(수결)은 손가락 마디를 그려 넣기도 하였다.

 

“나라에 천민의 수가 열에 아홉으로 많고 그 중에 아무리 능력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평민과 차별대우를 받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라는 성호 이익의 탄식처럼 노비를 재산이 아닌 사람으로 보는 것, 그리고 1801년 6만6,067명의 공노비 문서가 불살라진 것은 바로 ‘근대’의 출발이기도 하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