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진흥원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뉴스레터 31호는 이렇게 시작한다. ‘예술이 처한 가장 슬픈 현실 중 하나는 어쩔 수 없게도 자본의 기능에 의탁해 생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술과 돈의 관계. 참 어려운 문제다. 예술이 돈이 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고, 예술이 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예술이 돈도 될 수 있는 시대, 혹은 예술도 돈이 되어야 하는 시대?
올해 문화예술계가 탄생시킨 최대의 유행어는 ‘기초예술’이라고 한다. 다분히 현실과 유리된 개념으로 인식됐던 ‘순수예술’을, ‘예술의 기초성’에 대한 자각을 장려하는 의미에서 ‘기초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개념의 변화는 수십 년 간 축적돼온 사고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형식상의 변화보다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가는 자리에 민족문학 계열의 예술인들이 대거 포진해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고 나는 믿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나랏돈을 받아먹는 작가가 될 수 없다”며 문예진흥기금 수혜를 놓고 설전을 벌이던 선배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설전의 당사자들이 수십 억의 돈을 주무르는(?) 시혜자의 입장이 돼 있다.
현기영 한국문예진흥원장, 송기숙 대통령직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장, 최원식 인천문화재단 대표, 이창동 전 문화부장관 등이 다 민족문학 진영에 속한다. 예전에는 관에서 주는 돈은 받기도 어려웠고 받아도 찜찜했는데, 지금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다가 오히려 지나치게 체제 순응적인 작가로 변질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될 정도다.
물론 약간의 초조함도 있다. 과거에는 민족문학 진영이 정책을 맡으면 일체의 모순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문화정책의 핵으로 들어가 있는데도 외관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조금은 허탈한 것도 사실이다.
마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 비정규직 문제가 금방 해결되고 보육정책이 완벽해지고 못 사는 사람들이 잘 살게 되는 그런 세상이 올 걸로 믿었는데 그렇지 못한 데서 오는 실망감 비슷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문예진흥원에서 실시한 ‘2004 올해의 예술상’을 관심 갖고 지켜보았다.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처음 신설된 ‘올해의 예술상’은 한 해 동안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예술작품 중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정,시상하는 제도다.
뜻밖에도 30대의 신예소설가 천운영씨가 문학부문 최우수상을, 황석영씨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고를 가리되 가능성과 실험정신을 더 높이 산 것이다. 항간에서는 나눠먹기 식이라고 비판도 있는 모양이지만(상은 나눠먹으라고 있는 것 아닌가?) 조금씩 드러나는 이 변화를 나는 즐겁게 지켜볼 생각이다.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의 말처럼 “어쨌든 권력에 대한 생각까지도 바뀐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변화해 가는 중요한 징표”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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