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보다 '왜'...친절한 스릴러
아무리 뜯어봐도 ‘친절한 금자씨’를 닮았다. 여자의 잔혹한 복수극이라는 점이 맞닿아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을 되새기기라도 하듯 금자씨도, 오로라공주의 연쇄살인범 정순정(엄정화)도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람들에게 처절한 복수에 나선다. 그런데 ‘금자씨의 아류’라는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오로라공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요즘 잘 나가는 명계남씨가 대표로 있는,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의 제작사인 이스트필름의 후광때문일까. 아니면 배우출신 여감독의 희소가치 때문일까. ‘오로라공주’가 주변의 소문을 불식시키고, 흥행에 성공할수 있을지 꼼꼼히 따져본다.
△친절한 스릴러?=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영화라면 ‘일정한 공식’을 따른다. 처참한 살인이 잇따르지만 범인은 단서조차 남기지않는다. 영화의 수많은 복선과 장치가 누가 진범인지 모호하게 만들고, 영화후반부에 들어서야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며 진짜 연쇄살인범이 가면을 벗는다.
그런데 ‘오로라공주’는 이러한 공식을 거부한다. ‘오로라공주’의 연쇄살인범 정순정은 타이틀자막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잔혹한 살인극을 감행한다. 백화점에서 30대 여자가, 피부관리실에서는 옷가게 주인이 피살된다. 예식장 사장도 독살당한다. 매번 손님에게 껌을 건네는 택시운전자도, 갈비짐의 뚱보청년도 줄줄이 정순정의 표적이 된다. 마지막 타깃은 돈만 아는 변호사. 영화가 시작하면서 ‘연쇄살인범은 정순정’이라고 못박아버린다. 서울 강남 일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현장에는 80년대를 풍미했던 TV애니메이션 ‘손오공과 오로라공주’의 오로라공주 스티커를 여지없이 남겨진다.
초반부터 스릴러영화의 고갱이인 진범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오로라공주’는 ‘친절한 스릴러’다. 처음엔 쇼킹했던 살인장면도 ‘누가 그랬는지’를 알고 있는 탓에 차츰 차분해진다. 그런데도 식상하지 않다. ‘살인자가 누구냐’보다는 ‘왜 그토록 잔인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가’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빼앗아가기 보다는, 정순정의 심리상태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반전과 밀도가 녹록치않다.
피살당한 사람들은 정순정과 무슨 악연을 맺고 있는걸까. 영화는 차츰 유괴당해 살해당한 정순정의 딸과 연관돼있음을 시나브로 들춰낸다. 연쇄살인마와 지극한 모성애. ‘오로라공주’는 정순정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오로라공주’는 시작은 친절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거듭되는 반전속에 불친절해진다.
△영화배우출신 여감독은 뭔가 다르다= 방은진감독은 국내에서 몇안되는 연기파배우출신. ‘301 302’‘수취인불명’등에서 보여줬던 필모그래프를 등에 업고 감독으로 변신했다. 여감독이 흔치않은 국내영화계에서, 그것도 여배우출신인 방감독의 등장은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그러나 그는 주눅들지 않는다. 복수살인극이라는 다소 육중한 소재에 자신만의 연출력을 덧칠한다. 반전에 반전을 제공하며, 관객들에게 퍼즐맞추기의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상큼발랄’의 아이콘에서 서슬퍼런 살인마로 변신한 엄정화의 연기도 눈에 띈다. 여기에 정순정의 전남편역을 맡은 문성근이 신인감독의 허전한 부분을 촘촘하게 메워준다. 다소 거칠고 불안정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문성근 특유의 절제된 연기가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방점을 찍는다. 군더더기 없는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2% 부족하다= 범죄스릴러의 공식을 따르지 않은 탓에 무너져내린 긴장감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일찌감치 노출된 범인의 정체를 상쇄하려는 듯 감정과잉에 몰두한다. 긴장의 강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반전과 밀도의 수위를 높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극전개가 주춤거리고 감정선이 불규칙적이다.
결국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피붙이를 잃은 어미의 분노에 동감하고 감정이입을 하느냐가 영화성패의 관건이 될 듯 싶다. 과연 ‘오로라공주’가 작가주의적 ‘웰메이드스릴러’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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