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발자취 돌아보는 시간
몇 명만 모여도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이던 1986년 3월. 초기가 ‘안기부와의 투쟁’이었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은 문화가 넘쳐나는 시대,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들의 천국’이란 문패를 단 카페에서 ‘김용택 시인과의 만남’으로 태동한 황토현문화연구소(소장 신정일)가 4일과 5일 2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황토현문화연구소가 걸어온 길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그 발자취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처음 내는 책인데, 책 없이 할 수가 있어야죠.”
신정일 소장(52)은 “자료집 출판이 늦어지면서 부득이하게 일정을 변경하게 됐다”며 “기념행사가 일주일 미뤄지면서 항의도 많이 받았다”며 웃었다.
“단체 이름도 짓지 못하고 전북대 국문과와 국어교육과 이름을 빌려 행사들을 치렀죠. 김남주 시인의 문학강연 때는 안기부 직원들과 합숙을 했고, 동학농민군 원혼을 위로하는 씻김굿을 할 때는 전경차가 4대나 출동했었죠.”
신소장과 김성식 김판용 신형교 이정관씨가 중심이 되어 작게 시작된 연구소는 20년 동안 많은 성과들을 일궈냈다. ‘여름문화마당’에는 고작 10만원을 사례비로 받고도 흔쾌히 섬진강변을 찾아준 가수 안치환을 비롯해 신경림 김지하 김용택 안도현 최창조 정도상 강도근 장원 김진경 도종환 등 수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찾아줬다. 국토기행 ‘남녘기행’은 158회를 넘어서며 우리 땅 구석구석을 누볐고, 전주 덕진공원에는 김개남 장군과 손화중 장군 추모비도 세웠다. ‘모악산 살리기 운동’과 ‘길 이름을 우리말과 옛 이름으로 바꾸는 운동’도 펼쳤고, 수학여행과 소풍을 현장학습 개념으로 바꾸고 교과서에 ‘백두대간’을 집어넣는 데도 앞장섰다. 1991년에는 ‘전라세시풍속보존회’를, 2005년에는 ‘우리땅 걷기 모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온라인까지 7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할 정도로 많은 문화운동을 주도해 왔지만 아쉬움도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으로 전개한 완산문화권 제정이 좌절된 것. 신소장은 “우리지역 문화와 역사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완산문화권 제정이 결국 불발됐지만, 현재 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전통문화도시로 이어진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여지껏 ‘참문화가 참세상을 만든다’는 염원으로 활동해 왔지만, 과연 참세상이 왔는가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일들을 해나가며,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곧게 세워나가고 싶습니다.”
수많은 단체들이 태어나고 사라져간 20년. “그 세월을 벼텨낸 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럽다”는 그는 여전히 문화를 통한 변혁을 꿈꾸고 있다.
4일 행사는 오후 4시 전주민촌아트센타에서 열린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씨와 전북일보 부국장 김은정씨가 황토현문화연구소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고, 소리꾼 김연의 판소리 한마당, 한우리예술단의 풍물 굿 마당, 뒤풀이가 이어진다. 5일 일정은 동학농민운동의 땅 태인의 피향정과 고부 관아터, 변산반도 직소폭포에서 내소사에 이르는 산행으로 이어진다. 오전 8시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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