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우(원광대 교수)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글에 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과거에는 ‘슬프게 하는 것들’이 오늘은 ‘기쁘게 하는 것들’로 바뀔 수 있음을 생각하는 것은 아이러니(irony)일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얼마 전에 있었던 두 가지의 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 하나는 최근 들어 새로 만들어 지는 제도 가운데「등록문화재」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 사업 중의 하나인 「묵은 동네 담장 등록문화재」 등록과 관련하여 현지 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다. 이 제도는 그 대상이 생성된 후 50년을 경과한 문화유산 중 우리나라 근대사에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지역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되고, 한 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등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건조물, 시설물, 문학? 예술작품, 생활문화, 역사? 인물 유적 등이 모두 포함 되는 셈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시골 마을에 퇴락해 가는 상징처럼 여겨지는 묵은 동네의 담장이 그 대상의 하나가 되어 조사를 한 것이다. 우리 전북의 경우 세 곳이 있었는데 어느 곳은 퇴락한 명문가(?? )의 애잔함이 남아있고, 어느 곳은 150여 호의 마을이 이제 80호로 줄어들어 여기 저기 빈집들이 을씨년스런 마을의 담장이기도 하다. 어느 것은 흙으로 된 토담들이고 어느 것은 돌담들이고, 또 어느 것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 들이다. 어느 것이든 한결같이 숱한 세월이 흘러 이제는 삶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사라져 가는 것들-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문화유산의 이름으로 앞으로는 사랑 받는 존재로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일은 지난해 가을 개성을 다녀온 뒤의 느낀 소감이다. 개성을 세계문화유산 역사도시로 등재하기 위한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조사였는데 과거의 남아있는 문화유산, 또는 이제는 텅 빈 폐허의 자취들, 이런 것들을 정비하고 새롭게 조명하려는 작업이었다.
우리 전북은 과거 긴 농업사회의 가장 중심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그 삶의 현장이 그 의미를 잃고 뒤로 밀려나는 현실의 풍경이 되었지만 이제 그러한 현실의 풍경은 풍경을 넘어서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요소로 자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쩜 묵은 담장만이 아닌 등록문화재의 요소는 우리전북이 가장 풍부한 지도 모른다. 관계당국에서는 이런 제도를 홍보하여 의미를 갖게 될 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로 다시 태어 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종우(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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