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오페라단 제22회 정기공연 <춘희> 를 보고
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가 비평은 “남을 칭찬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라고 한 말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호남오페라단의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 <춘희> 를 보고나서 교묘한 술책을 부리지 않고 내놓고 칭찬해 주고 싶어 안달 난 필자임을 굳이 숨기지 않겠다. 춘희>
나는 지금 오페라 <논개> 를 작곡하고 있는 중이다. 고3학생처럼 스스로 고립돼서 말 그대로 불철주야 이 일에 매달려 살고 있다. 그 외에는 모두가 하찮은 것이다. <춘희> 공연 마지막 날까지도 가야할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시간에 없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나에게 엄청난 손실이 생겼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니(요즘은 작곡도 켬퓨터로 하는 세상이다) 내가 쓰고 있는 작업이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 베르디의 거대한 위업에 압도된 때문이었다. 쓰디쓴 좌절이 온 것이다. 그만큼 호남오페라단의 공연이 성공적이었다는 반증이다. 춘희> 논개>
요즘 우리 고장에 오페라단이 난립이라 할 정도로 많이 생겼다. 그러나 제대로 된 오페라 한 편을 올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니 공연 내용을 보면 오페라의 외양적 형태는 갖추었으나 음악의 생명력을 찾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공연물들이 일회적이고 시도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어 오페라는 재미없는 것이라는 편견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를 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이 땅에서 죽기 살기로 어렵사리 공연을 올리면 객석은 썰렁하고 칭찬보다는 비판만 난무하고 제작자는 빚에 몰리고… 목 비틀린 풍뎅이가 그러듯 대책 없는 맴돌기를 계속하다가 대개는 탈진하여 손을 털기 마련이다. 그런데 말이다 호남오페라단이 22회째의 정기공연을 축적하고, 나 같으면 열 번도 더 도망 쳤을 20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잘도 견디고 견뎌 감동적인 이번 공연을 일궈낸 것이다.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몇 가지 소회를 말한다면 오케스트라는 가수들의 역량을 이끌어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많이 섬세해지고 유연해져 몰입의 기쁨을 주었다. 욕심이라면 관, 특히 금관의 색채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수들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는 절제가 더욱 요구된다하겠다. 3막에서 바이올린 파트의 고음역이 극적 감정에 좀 더 다가갔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비장하리만치 서러운 그 섬세함이 주자들의 연주력 때문인지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다. 많이 애씀이 역력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2막이 끝난 후 커튼 콜은 상당히 낯설다. 객석에 혼란이 있었다. 일부는 일어서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박수와 환호 끝에 다시 3막이 올라가니 관람의 리듬에 단절감이 생겼다. 비올레따의 비극에 다가설 마음의 준비를 방해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소프라노 다리아 마지에로(비올레타역)는 스칼라의 주역가수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디바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김제선은 제르몽 역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너무도 멋지게 소화해냈다. 이런 대단한 가수를 만나는 기쁨이 오페라를 보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객석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가수들의 절창에 대한 화답도 열렬했지만 그 긴 막간에도(이것 좀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어둠속에서 간헐적인 기침소리 외에는 엄숙하리만치 조용하였다. 마치 경건한 성전에 와 있는 것처럼….
호남 오페라단의 다음공연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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