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이십일 세기 초엽, 나이 육십에 가깝도록 속진에 푹 빠진 채 허우적대며 살던 한 서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러다가는 제 명대로 못살겠다는 깨달음이 퍼뜩 뇌리를 스치더라. 속세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누옥 한 채 지어 거처를 옮겼더라. 어느 봄인들 꽃들 다투어 피지 아니하고, 어느 가을인들 잎사귀 울긋불긋 물들지 아니하리오. 우주 조화의 위대함을 이제야 깨닫겠더라.
자연의 가르침에 미련한 서생 깨우친 게 많았으나, 그 중 으뜸가는 깨달음은 인간의 안목이 조조보다 더 간사하다는 사실이라. 누옥 한 채만 횅하니 있을 적에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천초목이 자기 집 정원처럼 여겨져 시야가 탁 트이더니, 앞마당을 만들고 잔디 심고 나무 심고 울타리를 치니 금세 시야가 좁아져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버리더라. 제 앞에만 떡 놓으려 하는 사람치고 청맹과니 아닌 자 없다더니 틀림없는 말인 줄을 알겠더라.
어느 봄날, 백화만발할 제 춘풍 언뜻 불어 꽃향기 온 세상 가득 퍼지니 하릴없는 서생 그 향기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더라. 꿈길에 언뜻 보니 자기 집 안마당에 온갖 금수 모여앉아 웅성웅성 왁자지껄 소란스럽기 짝이 없더라. 깜짝 놀란 서생 몸을 숨기고 저들 하는 양을 살펴보니, 요즘 인간들의 행태에 관해 갑론을박하는 중이더라. 연단에 올라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는 연사는 배불뚝이 개구리라.
“분수 모르는 인간들은 우리를 우물 안의 개구리라 하여 소견 좁다 비웃으며 조롱하나 요즘 인간들 저지르는 소행 볼라치면 차마 목불인견이라. 인간들의 탐욕으로 세상 전체가 오염되어 가는 줄은 진작 알았으나, 남보다 더 배운 식자들만이라도 청렴해야 도리이거늘 오히려 썩는 냄새가 더욱 진동하니 인간세상 청정지역 눈을 씻고 찾아봐야 어디에도 없소이다. 우리 개구리 족속은 우물에 있으면 우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미나리 논에 있으면 미나리 논에 있는 분수를 지키나니, 이로 보면 우리가 사람보다 윗길이 아니오이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개구리 물러나자, 연이어 입에 거품을 문 채 두 팔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연단에 오르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보아하니 무장공자, 게더라.
“인간들은 우리 게 족속을 가리켜 간도 쓸개도 없는 무리라 하여 업신여기기 일쑤요. 그래, 인간은 우리와 달리 창자가 있긴 있소. 허나 옳은 창자 가진 인간이 몇 명이나 되겠소. 인간도 하느님이 아닌지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를 수는 있는 법, 그러면 사후에라도 자신을 되 돌이켜보아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 받을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세울 수가 있겠소. 인간으로서의 권위가 이처럼 땅에 떨어졌으니 창자 없는 우리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싸지요, 싸.”
연이어 들짐승, 날짐승 너도 나도 등장하여 인간을 성토하는데, 백면서생 부끄럽고 참담하여 차마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철렁하며 깊은 잠에서 문득 깨어나니 때는 한여름을 훌쩍 지나 상큼한 바람 솔솔 부는 가을이 되었더라.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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