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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교양 없는 사회, 인문의 위기 - 이재규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요즘 젊은 후배들에게 최근에 읽은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서적이 뭐 있느냐고 물어보면 일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책을 읽는다는 축도 대부분 실용서적이나 처세술이 대부분이다. 영화나 음악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쫙 읊어대는 친구도 문학, 역사, 철학은 까막눈인 경우가 적지 않다. 국문학 전공자조차도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작가들 이름과 대표작품 줄거리 정도를 암기할 뿐 원본을 찾아 읽거나 최근 작품을 읽는 경우가 드물다. 인문학 계통의 책들 중에 몇 천 부 판매를 넘기는 경우에는 ‘대박이 났다’고 할 정도로 인문 교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밑바닥 수준이다. 인문학자들의 자가진단을 빌지 않더라도 도처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문사철(文史哲; 문학, 역사, 철학)을 기본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통일성을 내세웠던 인문학, 지식인의 존재는 급속한 근대화, 자본주의 고도화 과정에서 계속 주변으로 밀려 나야 했다. 물질과 권력 중심의 이 사회에서는 ‘총체적인 지식인’ 보다는 기업이 요구하는 ‘표준화된 노동력’을 양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교육정책이 지배해왔으니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좁혀 본다면 돈 안되는 학과인 인문학 전공의 홀대, 인문계의 몰락이 바로 눈앞의 현상일 것이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진정한 근본 문제는 학과를 막론하고 우리 후세대 모두가 인간과 인간 가치에 관한 앎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교양, 인문을 잃어버린 조각 지식창고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선비보다 현대 대한민국 초등학생이 습득하고 있는 정보량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뿐이랴. 실시간으로 세계 반대편의 소식을 전해듣고 원하는 어떤 정보도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컴퓨터를 제 아무리 능숙하게 다룬다 하더라도 단순한 지식정보의 총합이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소통, 통합의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전통에서는 문사철, 인문을 관통해야 진정한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 서양 사상가 키케로도 모든 영역을 두루 꿰뚫어 보는 지적 능력,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 주어진 상황과 주제를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연설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 능력을 기르고, 심화시키는 지식과 교육하는 학문 분야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으로 보았다. 문사철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관련 학자들만의 위기일 수 없다. 인문적 교양이 사라지고 파편화된 지식만으로 쌓아올린 공동체는 영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일반의 인문적 교양을 드높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공인하며 인문학적 상상력이 다양한 전문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게 하는 사회. 진정한 의미의‘총체적 인간’을 지향하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인문학이 꿈꾸는 이상사회가 아닐까.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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