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올 겨울 들어 첫눈이 소담스럼게 내리던 날, 장성에 조문을 갔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한학자이신 산암(汕巖) 변시연(邊時淵)선생이 15일 오전 별세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일면식도 없이 글로써만 선생을 뵈었을 뿐이라 자손들과의 인연이 앞섰지만, 한 시대를 지역에서 꼿꼿하게 보내신 어른의 영전에 뒤늦은 인사를 올리는 것이 지역이 좋아서 살겠다고 작심한 마음에 조금이나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자위적인 조문이었다.
선생은 장성에서 태어나 전남향교재단 이사와 한국고문연구회장을 지냈으며, 1958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 시문을 집대성한 ‘문원(文苑)’ 73권을 편찬했고, 저서로 ‘산암문집’ 32권을 남겼다. 50년 넘도록 한문으로만 일기를 쓰신 선생은 선비로서 해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해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다. 역사학과 기록학의 언저리에 앉아서 지역에서 뭘 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 필자에게 선생의 그런 모습들은 큰 힘이었다. 겨울에 뵙기를 약속하고 준비하려는 중에 선생의 부음을 들었기에 발인 일에 내리는 눈이 그리 애처로웠는지 모른다.
장성장례식장의 빈소는 유학자의 모습답게 만사(輓詞)가 걸려있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드문 만사들을 보면서, 새삼 삶과 기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이 마를 일이 없이 슬픔이 앞선다는 만사의 글귀들은 고인을 보내드리는 지인들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장례의 풍습이 언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릴적 기억에 남는 것은 곡(哭) 소리에 묻힌 고스톱의 소리가 전부였던 것 같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례들이 갈수록 사라져 버린 듯한데, 만사를 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만사를 남기시도록 한 건의가 잘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역시 우리들이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기록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하고 있다.
이달 초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표한 1960년대 이전 전주관련 사진 공모작 중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사진집이 하나 있었다. 어행록(御行錄)이라 이름 붙여진 사진집은 평화동에 사시는 김홍두 선생이 출품하신 것으로 장례식의 제반 절차를 촬영하고 사진집으로 기록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돌아가신 날부터 하관할 때까지의 일자별 기록을 맨 앞에 붙이고, 각 절차별로 사진을 찍어 설명을 달아 놓은 이 사진집 한권이야말로 1950년대 후반 전주사람들의 장례 풍경을 설명하는 둘도 없는 자료이다.
올해 몇 차례 열린 옛 사진 공모전을 보면서 조선왕조실록은 보관했던 전라도의 역사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새밑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음주가무로 한해를 보내기 전에 한해의 기억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남겨둔다면 훗날 훌륭한 역사로 후손들에게 비쳐질 것이다.
/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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