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대상 무료 국악교실 열어
동네에서 소고잽이였던 아버지. 세숫대야를 들고 그 뒤를 따라다니던 아들은 명인이 되었다.
올 4월, 대한명인 문화예술교류회가 선정하는 대한명인 제 07-136호로 추대된 허영욱씨. 온고을민속악회 이사장으로 전주시민국악교실을 열고있는 그는 “하고 싶은 것, 놓지 못하는 마음이야 모두가 똑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동네에서 소고춤을 잘 추셨어요. 보름날이나 모심을 때면 풍물굿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보고 배웠죠. 굿쟁이 될꺼냐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맞네요.”
그의 고향은 임실. 풍물놀이에 빠진 것은 전주농림고등학교 농악부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어른들로 구성된 전북농악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채상이 주특기였다.
“키가 작으니까 소고를 시키더라고요. 그 때는 꽹과리나 장구가 하고 싶어도 선배들이 못 만지게 하니까 몰래 숨어서 연습 많이 했죠.”
한 때 해양경찰로도 일했던 그가 본격적으로 농악을 시작한 것은 87년부터. 이 때 전주농고 농악부 출신들과 함께 전주노령민속악회를 만들어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장원을 거머쥐었다. 농고가 생명과학고로 바뀌고 농악부도 없어진 지금, 그는 모교에 풍물패를 만들어 다시한번 대통령상을 안겨주고 싶다고 했다.
“좌도가 구성진 맛이 있다면, 우도는 가락이 다양하고 화려해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어울립니다. 지금은 좌도가 활성화돼 있지만, 농고가 민속예술경연대회(71)서 대통령상을 탈 때만 해도 우도 농악이 최고였죠.”
우도농악을 하는 허씨. 그의 꿈은 전주에 우도농악을 보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전주시민국악교실. 2005년 8월부터 시작해 지금 진행 중인 4기에는 140여명이 등록했다. 시에서 일부 보조를 받고 있지만, 무료로 진행되는 국악교실에 그의 부담은 크다.
“임실, 익산, 김제, 고창, 정읍, 남원…. 전라북도 어느 곳을 가도 농악 전수관이 있는데 전주만 없어요. 지금은 작은 공간의 교육장 정도지만, 나중에는 장소도 넓혀서 좀더 체계화된 전수관을 열고 싶습니다.”
그는 “전주에 풍물패나 사설학원은 많지만 체계적인 교육장은 부족하다”며 “내년에는 농악과 어울릴 수 있는 춤과 민요반을 만들어 시민국악교실을 작은 도립국악원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농악이 좋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이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의 봉사활동에 동행하는 이들은 제자들로 구성된 전주농악단이다. 그는 “최근 풍남춤대제전에서 1등을 했다”며 “처음 나간 대회에서 1등을 한 것만으로도 자랑스럽지만, 주부들인 단원들의 어려움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온 몸에 한이 맺혀있다 보니 아무래도 춤사위가 다르겠죠. 특히 자반뒤집기를 할 때면 온 세상을 다 뒤집는 것 같습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쉰넷. 그 나이에, 상쇠를 하면서 공중에서 몸을 뒤집는 자반뒤집기를 하는 사람은 몇 안된다. 소고놀이의 명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밀려드는 공연에 자반뒤집기를 몇 차례 선보였다는 그는 요즘 허리에 침을 맞으러 다닌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는 허씨. 사람들 박수소리에 한 번 할 것 두 번 하게 되는 것. 그게 예술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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