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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한가위] 중추월석, 저 달처럼 둥글게 - 최승범

어렵고도 팍팍한 세상살이였대도 나의 어린시절 추석의 낮과 밤은 사람살이의...

음력 팔월 보름날을 명절로 삼아온 것은 먼 옛날로부터 였다. 그 시원은 신라 제3대 유리왕 (AD 24-56) 때의 ‘가배’(嘉排)에 두고 있다.

 

그후 이 명절의 이름은 여러가지로 불리워 왔다. 가배일·가배절·가우일·가우절·가위·가윗날·중추절·추석절·팔월대보름·한가위·한가위날·한가윗날 등등을 들 수 있다.

 

이제 ‘한가위’와 ‘추석’의 이름이 주를 이라고 있다. 저널리즘에서의 사용빈도로 보면 ‘추석’이 추세인 것 같다. 추석은 중추월석(仲秋月夕)의 한자구가 줄어든 말이다.

 

음력에서의 가을은 7·8·9의 3개월이다. 8월은 가운뎃 가을(중추)로 보름달도 제일 밝은 달이다. 백로(白露)·추분(秋分) 절기려니 날씨 또한 선선하여 쾌적한 때이기도 하다.

 

어린시절엔 설·단오·동지와 더불어 4명절 중에서도 추석 명절 쇠는 일이 가장 즐겁고 흥겨웠다. <농가월령가> 의 저 흥결이었다고 할까.

 

‘북어 쾌·젓·조기로 추석 명일 쇠어 보세. 신도주(新稻酒)·올벼 송편·박나물·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이 철에는 들이나 산에 밤·대추·머루·다래·개암도 있어 성묘길을 가고오며 군입정을 즐길 수도 있었다.

 

추석날 아침에는 산듯한 추석빔을 입는다. 그리고 송편차례를 올리기 마련이었다. 차롓상을 물리기까지는 송편에 입맛을 다셔서는 안되었다. 그러니까 조상께 절을 올리는 일보다도 마음은 송편에 끌려 있기도 했다.

 

성묘길은 할아버지의 옆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졸랑거리기도 하고, 아버지나 작은아버지의 뒤를 따르며, 마을이나 산소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웠다.

 

추석명절이면 언제나 대가족제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으로 아버지 형제분과 사촌들이 모이어 달처럼 둥근 단란(團欒)을 짓기 미련이었다. 생업을 좇아 밖에 나가 활동하던 사람도 추석에의 금의환양을 꿈꾸고 가족에의 그리움을 달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성묘를 마치고의 추석놀이는 밤이 이슥토록 이어졌다. 어린이는 어린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대로, 부녀자는 부녀자들끼리 놀이마당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내가 어린시절을 자란 ‘노봉’ 마을에는 정자가 있었다. 젊은이들은 집에서 차려낸 풍성한 음식들을 놓고 술·노래·춤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이날 이밤만 같아라’의 한마음으로 정자가 떠나가라 얼싸절싸의 흥바람이었다.

 

또래또래 어린이들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를 입모아 부르며 마을 고삿길을 뛰어다니기도 하였다. 마을의 누나나 새댁들은 넓은 안마당에 모여 손에 손을 맞잡고 강강수월래의 노래와 춤으로 원을 그리며 흥을 푸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추석명절은 낮이나 밤이나 흥결이었다. 그 흥결을 마냥 돋우기 위해서는 하늘이 맑고 달이 밝아야 했다. 그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더러는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리는 해가 있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추석날 비가 내리면 잡친 기분이었지만 어른들은 농작물에 흉작이 들 조짐이라는 걱정이었다. ‘추석비가 내리면 토기도 새끼를 갖지 못한다’는 속신을 말하기도 하였다.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인가. 달에는 토끼가 있다는 전설로 하여서 이러한 속신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엔 달에 대한 신비감도 추석명절을 맞는 단란하을 짓는 둥근 마음도 사라지고 없어진 세상이 아닌가. 이미 지난 세기의 60년대 달의 표면에 착륙한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가 있었거니와 바로 며칠 전에는 일본에서도 달 탐사를 위한 위성 ‘가구야’의 성공적인 발사를 보도한 바 있다. 오늘날의 과학 발전을 탓할 생각은 없다. 우리도 한때 ‘과학 입국’을 내세운 바 있지 않았던가.

 

요는 사람살이에 있어서의 메말라가는 정서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부시게 푸른 가을 하늘, 이밤의 덩두렷이 밝은 달 아래에서의 상념이다. 어렵고도 팍팍한 세상살이였대도 나의 어린시절 추석의 낮과 밤은 사람살이의 흥결이 있었다. 온마을 사람들이 스스로의 근본을 생각하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둥글게 둥글게 춤추고 노래하는 꿈과 낭만의 물결이 있었다. 남·북, 동·서의 사람들이 다같이 중추월석, 이밤의 달처럼 하나로 둥글 수는 없을까.

 

/최승범

 

 

고하(古河) 최승범 시인은

 

1931년 남원에서 태어나 전북대 국문과 교수와 인문과학대학장 역임하고, 현재 전북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전주 스타뱅크 부설 ‘고하문예관’ 관장으로 이 곳에 가면 3만5000여 권의 도서 및 국문학 연구 자료들이 있다.

 

1958년 「현대문학」에 시조를 발표해 등단, 저서로 「한국수필문학연구」 「남원의 향기」 「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시조 에세이」「스승 가람 이병기」「풍미기행」 「한국을 대표하는 빛깔」「한국의 먹거리와 풍물」「벼슬길의 푸르고 맑은 바람이여」 「꽃 女人 그리고 세월」「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 등을 발표했으며 시집으로는 「난 앞에서」「자연의 독백」 「몽골기행」 「천지에서」 「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등이 있다.

 

올해 ‘한국시조대상’ 첫 수상자가 됐다. ‘2007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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