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만, 소설은 '이야기(story)'와 '이야기하기(discourse)'를 양 축으로 하는 양식인 바, 스토리를 진술하는 문장 및 사건과 인물을 얽어내는 짜임새로 이루어진 그 후자에서 예술성이 확보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다시금 환기하게 되었다. 결선에 오른 일곱 편을 읽고, 대체적으로 그 스토리는 재미있었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유달리 눈길을 끄는 문체도 없었고, 탄탄한 구성력을 찾기도 어려웠던 것인데, 이는 응모자들이 소설 쓰기를 쉽게 생각한 결과일 수도 있겠고, '글쓰기/글짓기'를 귀치 않게 여기는 사회풍조 탓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재독한 결과 다음 세 편으로 압축하였다.
'깔깔대며 웃는 자작나무'(안금열)에서는 고양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목소리로 시종 차분하게 화자의 심리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만만치 않은 솜씨가 확인된다. 허나 이야기 속 사건이 단조롭고 '당신'이란 존재가 관념화되어 있는 것까지는 이 작품의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으되, 그것이 너무 반복·강조되다보니 전체적으로는 스토리가 희석된 내적 독백 위주의 수필식 소품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 '구경하는 집'(전석순)의 경우, 일상적인 소재에서 깊이 있는 주제를 끌어내는 작가의 안목이 눈에 띄고, 문장의 기본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소도구의 과장스런 부각과 다소 혼란스럽게 진술되고 있는 가족관계 등이 전체 구성상 불균형을 초래하고, 편지글 형식도 이 주제에 충분하게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여겨진다. '낙서'(곽재동)는 우선 구성력이 돋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빠른 사건 전개와 반전, 독자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함축적 문장, 영업사원들의 강박적인 삶이라는 시의적인 주제 설정, 그것을 숫자로 연결시키는 장치 설정 등에서 단편소설의 미덕을 고루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문체상 치밀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가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또 보다 더 면밀한 구성으로 주제가 작품 전반부에서 일찍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독서의 긴장을 후반까지 강하게 밀고 갈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심사자들은 의논 끝에 '낙서'를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결정하였다. 크게는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아쉬움 탓이지만 실제로는 작품 전체에서 뭔가 '2%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인데, 굳이 그게 뭣인가 밝히라면, 다소 상투적 표현이기는 하나, '치열한 작가의식과 지극한 장인정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임명진(문학평론가, 전북대 교수)·이병천(소설가, 전주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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